[어린이 책-강냉이] 전쟁으로 두고 온 고향집 강냉이는 어떻게 됐을까?

입력 2015-12-17 19:24

‘인지쯤(지금쯤) 샘지(수염) 나고.’

총총한 별들이 건드리면 사탕처럼 주르르 쏟아질 것 같다.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껑충하게 자란 옥수수의 잎사귀들이 가슴 아리도록 푸르다. 인민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보따리 싸들고 황망히 떠나온 여름의 피난길. 멀리서 들려오는 포탄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느 낯선 강가에서 옹기종기 밤을 지새우는 피난민들 사이에서 장탄식이 새어나온다. 엄마 아버지가 “고향집은 무사할까”하고 밤별을 쳐다보며 걱정할 때 어린 소년도 제가 심은 옥수수가 생각난다.

봄날 집 앞 토담 밑에 엄마랑 형이랑 함께 옥수수를 심은 기억은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 수시로 거름을 주며 가꾸어 어느새 키만큼 옥수수가 자랐을 때 전쟁이 터진 것이다.

폭격으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산천과 소년이 밤에 떠올리는 푸른 옥수수가 보여주는 생명의 대조가 강렬하다. 결국 전쟁의 참화로 수염이 났으니 슬슬 알이 배어야 할 옥수수는 무참하게 잿빛으로 변한다. 고향의 집들과 미쳐 챙겨오지 못한 세간, 된장·고추장 담긴 장독도 그렇게 파괴가 됐을 것이다.

평생 작고 약한 이들을 위해 글을 쓰다가 떠나간 고(故) 권정생 선생이 초등학교 때 쓴 시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강냉이 알 같은 큼지막한 점 하나를 찍어 눈을 표현한 사람의 얼굴이 한없이 순박해 보인다. 그림책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오롯이 살렸다. 그래서 단어의 뜻에 대한 부모의 설명이 필요할 듯하지만, 가슴 뭉클하면서도 정감 있는 그림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가 전달된다.

이 그림책을 그린 작가 김환영을 비롯한 한·중·일 작가 10여명은 2007년 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그림책을 그리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평화그림책 시리즈 열 번째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