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명호] 트럼프주의와 후보교체론

입력 2015-12-16 17:35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쟁을 보면 지금 돌아가는 미국 정치·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초반 이변으로 취급됐던 도널드 트럼프의 선두 질주는 트럼프주의(Trumpism·트럼프가 무슨 막말을 하건 무조건 지지하는 현상)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최대 상수다. 백인 보수층의 위기감을 치고 들어가는 막말과 극단적 주장은 거칠 것이 없다.

그 배경에는 경제 위기를 느끼는 중산층의 불만, 진보적 흑인 대통령에 대한 우파의 반감, 테러 공포, 소수민족 배척 등이 배어 있다. 그런 분위기 탓에 미국사회는 개방, 포용, 자유, 아메리칸 드림, 이민자의 나라 같은 긍정적 가치들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 자리를 폐쇄주의, 이기주의, 진영 논리 같은 것들이 조금씩 메워가고 있다. 정치에서 타협 정신은 약화됐고, 배타적 공격성은 확대됐다. 트럼프주의는 긍정적 가치를 잃어가는 ‘미국병(病)’의 초기 증상쯤으로 보인다.

그런데 보수 주류에서 트럼프가 본선 경쟁력이 있느냐는 회의론이 불거졌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이 거의 확실하다. 클린턴이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많다. 클린턴 캠프에서도 가장 쉬운 상대로 그를 꼽는다. 대통령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공화당 지도부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후보교체론이 논의되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거의 없던 현상이다.

현재 치고 올라오는 후보는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인 1970년생 테드 크루즈다. 전형적 보수 우파 기독교도로, 정책면에서는 트럼프보다 더 오른쪽이다. 미 언론들은 공화당 주류가 크루즈를 대체 후보로 여기는 듯하다고 본다.

보수 주류가 더 이상 미국 정치·사회의 일탈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종의 집단지성을 발동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막말이 인기를 끄는 사회는 불만이 팽배해 있고 뭔가 고장 나고 있다는 신호다. 후보교체론의 성공 여부를 미국 보수층의 ‘건강한 복원력 지수’로 판단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