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행] ‘위험분담제’ 한계 개선 방안을 찾아라… 진입장벽된 ‘경제성 평가’ 기준 낮추자

입력 2015-12-20 17:42
지난 1일 열린 29회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 토론회에서는 위험분담제 개선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는 지난 1일 '환자 중심의 암 보장환경을 위한 의약품 평가정책 점검-위험분담제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29회 고품격 건강사회만들기 토론회를 개최했다. 암, 희귀질환 등 주요 중증질환 환자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 차원에서 정부에서 도입한 '위험분담제도'는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개선했다. 다만 여전히 이 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 운영 상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정부, 학계, 업계, 미디어를 통해 두루 형성됐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위험분담제 개선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제='환자 중심의 암 보장환경을 위한 의약품 평가정책 점검-위험분담제 중심으로'

◇일시=2015년 12월 1일 오후 2시

◇참석자=김열홍 대한암협회 이사(고려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 이윤신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 이재현 성균관대 약학대학 교수,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진행=김단비 쿠키뉴스 기자

◇연출=정현호 쿠키건강TV PD

◇방송=2015년 12월 21일 오후 7시

-위험분담제란 무엇이고 현재까지 위험분담제에 적용된 약제가 모두 몇 개인가

◇이윤신= 위험분담제도는 고가의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에 임상적 유용성이나 재정영향이 불확실할 때 그 재정영향을 제약사와 공단이 나눠서 분담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재현= 위험분담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적용 대상이 된 약제가 올해 10월 기준으로 8가지다. 주로 항암제나 희귀의약품이다. 소아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치료제,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전이성 전립선암 치료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혈색소뇨증 치료제, 폐섬유증 치료제 등이 있다.



-현재 위험분담제도에 대해 환자들은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가.

◇안기종= 위험분담제는 약이 갈급한 말기 암환자들, 중증환자들에게는 생명 같은 제도다. 다만 현재 위험분담제가 적용되는 치료제들은 최근 허가된 것이 아니라 4∼5년 전에 허가된 약들이다. 한달 약값이 1000만원에 달하는 약들도 있는데, 돈이 없어서 약을 먹지 못하는 환자들이 전체 환자의 약 70%에 달한다. 안타까운 것은 좋은 신약이 나왔어도 정부, 제약사의 약가 줄다리기로 인해 수많은 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약 복용을 포기해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김열홍= 위험분담제가 생기게 된 근본적 취지는 환자들이 수년간 비급여로 부담해온 많은 약제들을 제약사들이 어느 정도 분담하면서 건강보험 급여권으로 들어오게 하자는 공감대로 만들어 진 것이다. 식약처 허가를 받고도 보험 등재가 되지 않은 치료제들이 많다. 이러한 대안으로 만들어진 위험분담제가 환자의 신약 접근성을 강화했다고 보기엔 미흡한 부분이 많다.



-위험분담제도의 한계점과 개선 방향은?

◇이재현= 위험분담제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 자료를 필수적으로 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적용 대상이 되는 약제들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제도운영상에 있어서 약이 임상시험을 통해 계속 효능을 넓혀가는 여지(적응증 확대)들이 남아있는데, 위험분담제 대상 약제들은 급여기준이 확대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김열홍= 기존 제도의 틀에서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행 보험급여 등재 시스템 상에서는 들어오기가 어려운 약, 소수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약이지만 약의 보험적용 시 재정추계가 정확히 나오기 어려운 약 등에 대해 유연하게 제도가 적용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최근에 등장한 약제들은 과거 약제들처럼 모든 환자들에게 일괄적으로 투여해서 효과가 있는 치료제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가 약가에 대한 비용부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의 차원이 아닌, 약제 특성에 따라 적응증을 넓혀나갈 수 있도록 제약사의 제안들을 제도에 활용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위험분담제도에서 ‘경제성 평가’는 약의 보험 등재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가.

◇이윤신=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단일 보험의 형태이며, 사회보장제도 중에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이라는 한계 속에서 운영되다 보니 가격운영체계를 갖게 됐다. 신약이 건강보험에 등재될 때 ‘임상적 유용성’과 ‘경제성’이 있는 약들을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에 등재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고 이것을 선별등재원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경제성평가는 이 중에서 비용대비 효과성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평가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김열홍= 위험분담제 도입의 배경은 박근혜 대통령도 강조했던 것처럼 필수 의료가 빨리 의료 현장에 접목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위험분담제를 통하는 약제들은 의학적 유용성이 경제성평가보다 우선적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한다는 조건이 많다. 경제성 평가는 필요하지만, 특정 약제가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환자가 그 약에 접근하는 턱이 낮아지도록 경제성평가를 기준을 낮춰야 한다. 대신 임상적, 의학적 유용성의 가치를 높이는, 가치 간의 차이를 나누는 판단이 필요하다.

◇이윤신= 정부도 약가 등재 시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총 8개 성분의 위험분담 약제가 등재가 돼 있는데, 그 중 총 4개 성분은 소위 말하는 경제성평가 지표를 가지지 않고 보험에 등재가 됐다. 진료 상 필수가 인정되는 약제나 근거생산이 필요한 약제들에 대해서는 완화해서 위험분담 평가에 적용해왔다. 또한 혁신적인 신약의 가치를 얼마나 반영할 것이냐는 부분은 정부도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올해 5월에는 관련 법령들과 평가 규정을 개정해서 그 부분에 대한 평가 기준을 대체약제 수준보다 높은 수준에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었다.



-신약의 등재를 어렵게 하는 것이 ‘경제성 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이재현= 경제성 평가는 기존 치료법이나 기존 약제와의 비교를 전제로 한다. 제약산업에 있어 신약의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맞춤형 치료가 대세가 되고 있다. 즉, 대중적인 약에서 환자의 질병에 따른 치료제 사용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약과는 개념이 다른 약들에 대해 기존 약들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고 경제성평가 제도를 대입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열홍= 과거에는 100명이면 100명 모두 해당 질환을 갖고 있는 전체 환자한테 A라는 약제를 투여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이 바뀌어 환자마다 다른 치료가 적용된다. 최근 영국에서는 신약을 등재할 때 경제성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여러 가지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분석해서 그 약제의 타당성을 판단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성 평가 이전에, 의학적 타당성을 고려해 제도의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위험분담제도를 통한 약제 급여 기준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표적항암제다. 표적치료제의 작용기전은 특정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것에 있기 때문에, 여러 암 종에 넓게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현재 위험분담제로 적용된 항암제의 경우에도 다른 암으로 추가 적응증을 받았을 경우, 현재로서는 위험분담제를 통한 급여확대가 제한돼 있다. 좋은 약이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이 돼도, 제도적 한계로 인해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환자 비용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위험분담제를 통해 보험급여가 적용된 약제가 다른 암에 추가 적응증을 받을 경우에도 보험급여 확대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 조치가 필요하다.

◇안기종= 진퇴양난이다. 환자의 약 접근성을 확대하고자 제도가 도입된 것인데, 적응증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항암제들이 위험분담제도 등을 통해 급여권에 들지 못한다면 결국 환자도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해 약을 먹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묘수가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의료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자의 접근성 확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방안이 있다면.

◇이재현= 정부가 제도를 얼마나 탄력적으로 운영 하느냐가 중요하다. 약가를 무작정 통제한다고 정부 재정이 절감되지 않는다. 위험분담제를 약제비 통제 수단으로 운영하면,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게 되고, 그것이 곧 국가 재정손실이다. 정부가 무조건 규제하기 보다는 ‘협상’의 형태로 자리를 갖고 논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안기종= 위험분담제 가장 큰 약점은 적응증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좋은 항암제들이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오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의약품 접근권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재현= 우리보다 앞서 위험분담제를 시행했던 유럽 스톡홀롬 네트워크라는 정책연구소의 2010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위험분담제는 성패를 예측하기 어려운 미성숙한 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행정절차와 협상과정에 드는 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위험분담제의 실패요인을 살펴보면 약의 효과로 의한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제도 설계가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약제비 절감이라는 정책목표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결정자와 제약사 모두가 ‘위험을 분담한다는 것’ 원래의 취지를 기억하고, 공익을 목표로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제도 운영상의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김열홍= 위험분담제는 결국 반드시 필요한 의료가 환자에게 빠르게 접근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 운영에 있어서의 핵심은 정부가 얼마나 유연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본 제도의 처음 설립취지로 돌아가서 생각해보고, 미약한 부분이 있으면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윤신=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제를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해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표에는 다들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도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서 위험분담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제도상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서는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

정리=장윤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