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혼돈의 야권] ‘진보 vs 중도’ 이념갈등에 정체성 실종… 결국 ‘참사’

입력 2015-12-16 04:01
안철수 의원이 15일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지역 언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 기자의 질문을 들으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새정치민주연합 내 중도개혁 그룹과 진보성향 그룹 간 이념갈등이 다시 전면화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이 10년 넘게 이념갈등만 거듭하면서 당 정체성과 대여 협상력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념경쟁이 내부 권력투쟁 도구로 변질됐다는 분석이다. ‘이념 나침반’을 잃은 제1야당이 정책과 비전 제시는 물론 당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1야당 이념갈등의 뿌리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서 비롯됐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시민사회·진보성향 인사들이 대거 영입되면서 당내 진보블록이 크게 확장된 것이다. 이후 중도노선 채택을 시도할 때마다 이념갈등이 불거졌다. 2009년 당시 민주당은 ‘당의 현대화’를 기치로 내걸고 ‘뉴민주당 플랜’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내 진보진영은 초안이 발표되자마자 “지나치게 우향우했다” “한나라당 이중대”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해 1월에는 새정치연합 김한길 의원이 공동대표 자격으로 중도강화를 천명하자 똑같은 논란이 반복됐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표 취임 이후에도 ‘중도 외연 확장’과 ‘진보 정체성 강화’라는 반목 속에 양 진영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외과 교수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느 정당이나 노선경쟁이 있지만, 현재 야당의 이념갈등은 권력투쟁의 도구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념경쟁이 당내 주도권 확보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발전적 논쟁으로 승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의 탈당 역시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안 의원의 요구와 ‘새누리적 프레임’이라는 문 대표의 반박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면서 일어난 권력투쟁의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로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극한의 대립으로까지 발전하면서 벌어진 ‘참사’라는 얘기다.

당내 이념갈등의 폐해는 당 정체성 혼란과 대여 협상력 약화로 나타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수도권 의원은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우클릭·좌클릭 논란이 일어나니 나도 우리 당이 중도정당인지, 진보정당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뚜렷한 정책방향을 정하지 못하다보니 대여 협상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중도 진영인 박영선 의원은 강경파의 반발로 재협상만 거듭하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문 대표는 당시 박 의원의 협상 결과에 반대하며 단식투쟁까지 벌였다. 노무현정부가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이들이 선봉에 서서 반대하는 일도 벌어졌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추진했던 일을 정권을 놓치자 반대하다보니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비난여론도 일어났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재 야당의 이념갈등은 서로를 적으로 보는 ‘대결 프레임’으로만 몰고 간다”며 “당내 수평적 논의구조와 당론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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