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회장 실형] 법원 “건강·경제 고민했지만 法질서가 먼저”

입력 2015-12-15 21:50
마스크를 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15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이 회장은 실형 선고가 나오자 망연자실해하며 한동안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구성찬 기자
“고심 끝에 피고인 이재현에 대해선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형 유지’와 ‘집행유예 선처’라는 두 선택지를 쥐어든 법원은 ‘공평한 법 적용’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갔다. 투병 생활과 그룹 경영공백 등을 거론하며 선처를 호소한 이재현(55) CJ그룹 회장은 이 원칙 앞에서 피할 수 없었다. 재벌 회장에 대한 법원의 ‘집행유예 공식’은 또 한번 깨졌다. 휠체어를 탄 채 피고인석에 앉은 이 회장은 선고가 끝난 뒤에도 10여분간 법정을 떠나지 못했다.

대기업 회장도 ‘법대로’ 처벌

이 회장 파기환송심의 핵심은 ‘집행유예’ 선고 여부였다. 대법원은 지난 9월 이 회장의 상고심 선고에서 조세포탈(251억원) 횡령(115억원)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일본 빌딩 매입 혐의에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죄’를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상대적으로 형량이 낮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이 적용되면 집행유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CJ 측이 “좋은 결과가 나오면 선고 직후 (이 회장이) 소감을 밝힐 것”이라며 기대감을 품었던 이유다.

이 회장은 2년5개월간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끊임없이 ‘건강 문제’를 호소했다. 2013년 8월 만성신부전증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받은 이 회장은 이후 9차례에 걸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수감기간(107일) 중에도 치료 명목으로 수차례 병원을 찾았다.

이 회장 측은 지난달 10일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이) 선천적 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를 앓고 있어 근육 위축 등이 진행 중이고, 신장이식 수술 이후 부작용으로 면역억제제를 처방받고 있다”며 “사실상 수형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따르면서도 ‘실형’을 선고한 1·2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15일 “대기업 총수라 하더라도 조세를 포탈하거나 계열사를 이용해 사익을 취할 경우 엄벌을 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해 건전한 시장경제 질서와 공평한 사법 체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심에서 “(이 회장의) 영향력에 걸맞은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판시한 것과 같은 취지다.

이 회장 측이 호소해온 ‘건강 문제’에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건강 문제,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서 하루빨리 경영에 복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 등을 가볍게 본 것이 아니다”면서 “기업 집단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로 인해 얻는 이익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더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 포탈 세금을 납부하고 계열사 피해액을 변제한 이 회장의 ‘사후 조치’는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재판부는 “대규모 자산을 가진 기업가가 범행이 발각된 후 행한 조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며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범죄의 예방,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업 경영 정착이라는 측면에서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상고한다지만…사실상 실형 확정

이 회장 측 변호인은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실형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대법원이 상고심에서 ‘일본 빌딩 매입’ 관련 배임 혐의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에 유죄를 내렸기 때문이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조세포탈·횡령 혐의는 기속력이 있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사실상 확정됐다”고 언급했다.

형량이 높다고 상고할 수도 없다. 형사소송법은 사형이나 무기,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만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은 이 회장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다툴 수 있는 부분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 혐의다. 다만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특별법 대신 형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취지를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대법원이 이를 다시 파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양민철 정현수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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