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접 노동개혁·경제활성화·테러방지법을 선거법보다 먼저 직권상정해 달라고 15일 공식 요청한 것은 그만큼 법안 처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절박한 상황인식에서 비롯됐다. 결국 이들 핵심 법안이 ‘연내 처리’되기 위해선 의장의 직권상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인 셈이다. 국회가 노동·경제 등 민생과 직결되는 사안은 철저히 외면하면서도 자신들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선거법만 처리하려 한다는 불신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야당은 선거법이 처리되면 기타 학업(다른 법안 처리)에는 뜻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선거법이 처리되면 땡”이라며 “그런 이유로 (선거법만 직권상정할 경우) 국회의원 밥그릇만 챙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고 나머지 법안들은 완전히 떠내려갈 수 있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년 1월 1일부터는 정년이 연장되기 때문에 청년 고용절벽이 예고돼 있고, 언제 올지 모르는 경제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청와대는 여야가 지난 2일 ‘노동개혁법은 임시국회, 경제활성화법은 정기국회 회기 내 합의 처리’를 합의했음에도 이런 약속을 어기고 선거구 획정안을 담은 선거법만 처리하자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거법만 직권상정될 경우 나머지 핵심 쟁점 법안은 연초 선거정국과 맞물려 폐기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국민 심판론’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이런 경색국면 속에서도 청와대가 계속 ‘직권상정’ 카드를 밀어붙일 경우 야당의 강력 반발과 이에 따른 정국의 급속 냉각은 불가피해 보인다.
현 수석은 국회에서 정 의장을 20분간 면담했다. 그는 그러나 박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현 수석은 “대통령 재가를 받은 게 아니다”며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보면 (대통령의) 답답함과 절박함이 묻어 있다. 담당 비서로 몸둘 바를 모르겠고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 의장께 (여야 간) 여러 가지 중재 노력을 통해 법안 처리의 근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드렸다”며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10분 정도 정회를 선포하고 중재 노력을 하신 것처럼 그런 노력을 해 주시면 좋겠다는 입장을 간곡하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고도 했다.
또 “의장이 오늘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 의장 방에서 못 나가게 해서라도 합의를 종용하고 국회의 정상 운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국민이 보기 원한다”며 “그런 국민의 입장이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 수석은 야당 반응 등을 고려해 정 의장 언급은 공개하지 않았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선거법만 처리 땐 쟁점법안 ‘뒷전’ 절박감… 靑, 노동개혁 법안 등 직권상정 의장에 요청 배경
입력 2015-12-15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