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만 부족하지 않아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올해 일흔 다섯 된 신주영 할아버지의 말이다. 그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에 이사 온 것은 20년 전이다. 사고와 질병이 찾아오며 가세가 기운 탓이다. 아내 이순이(63) 할머니는 오른손에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 할머니는 30년 전 근무하던 프라이팬 제조공장에서 압축기에 손이 빨려 들어가 부상을 당했다. 수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뼈가 그대로 굳어 현재는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한다. 신 할아버지는 간경화로 투병중이고 신장 약화로 혈액투석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형편은 빠듯하다. 겨울철 하루 평균 6장을 때야 하는 연탄을 사는 것이 이들 노부부에겐 큰 부담이다. 때문에 꼬박꼬박 연탄을 채워주는 밥상공동체·연탄은행(대표 허기복 목사)이 한없이 고맙기만 하다.
14일 백사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은 저마다 연탄에 대한 고마움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난한 형편을 알고 연탄을 지원해주는 봉사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더없이 감사하다.
박영자(74) 할머니는 무릎 관절염이 심해 거동이 불편하다. 매달 정부 보조금 13만원과 막내딸이 주는 용돈 10만원이 할머니 부부의 한달 생활비다. 보건소로부터 무릎수술 권유를 받았지만 수술비가 비싸 엄두를 못 낸다. 그나마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무릎에 좋다고 해서 하루 평균 12장의 연탄을 땐다. 박 할머니의 형편을 아는 연탄은행에서는 연 7회에 걸쳐 700장의 연탄을 제공하고 있다. “때로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하늘을 원망할 때도 있지만 제 처지를 알고 지속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견딥니다.” 박 할머니는 연탄배달을 온 자원봉사자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백사마을과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등 서울지역 연탄사용가구 주민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연탄은행 신미애 국장은 “연탄사용가구 가운데 70% 정도가 독거노인이고 75세 이상 여성의 비중이 높다”면서 “소득이 일정하지 않은 차상위 계층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자녀가 있어도 부양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신 국장은 “연탄을 때는 어르신들 대부분 고단한 삶을 살고 계시며 사람 사이의 정을 그리워한다”면서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탄 지원’이 그 도움의 대표적 예다. 허기복 목사는 “연탄수요조사를 위해 주민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며 “연탄은 따뜻한 겨울을 나게 만드는 도구이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을 전하는 매개체”라고 말했다.
연탄 후원, 한 장 값 500원부터 가능
연탄은행은 국내 연탄사용 가구를 총 16만8000곳으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외부로부터 연탄을 지원받아야 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약 10만 가구다. 연탄사용 가구는 동절기에 보통 하루 3∼4장을 땐다.
닥쳐올 추위에 직면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은행과 국민일보는 300만장을 목표로 ‘사랑의 연탄’을 모으고 있다. 후원방법은 다양하다. 연탄후원은 연탄 한 장 값인 500원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연탄가스배출기 교체를 위한 후원은 가구당 5만원, 연탄보일러 교체 후원은 가구당 20만원부터다.
현장 자원봉사자로도 활동할 수 있다. 단 자원봉사는 적어도 봉사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에 신청해야 한다. 연탄 투입 시점 등 연탄 수혜자의 여건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허 목사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후원으로 연탄은행을 운영하기 때문에 후원자의 동참이 큰 힘이 된다”며 “사랑의 연탄 모으기 캠페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탄은행은 후원·자원봉사 참가자들에게 기부금 영수증과 봉사활동 확인서, 연탄천사증 등을 발행해준다. 후원 및 자원봉사 참여 문의는 홈페이지(babsang.or.kr)나 전화(1577-9044)로 가능하다. 후원계좌는 기업은행 002-934-4933(예금주:연탄은행)이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의 연탄은행’] “연탄 채워주는 봉사 손길에 고단한 삶 견뎌”
입력 2015-12-15 18:47 수정 2015-12-15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