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북쪽으로 달궁·뱀사골 계곡을 품고 있는 전북 남원시 산내면은 10여년 전부터 귀농, 혹은 귀촌 일번지로 통한다. 산지라서 농사짓기에 썩 좋지않은데도 귀농 인구가 몰렸고, 최근에도 ‘생계형’이 아닌 ‘가치형’ 귀촌 인구가 꾸준히 모여든다. “의식적으로 귀농이니 귀촌이니 하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요. 그냥 ‘이사 왔다’고 합니다.” ‘맨땅에 펀드’ 운영자 권산씨의 말이다. 이 펀드는 작물을 경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먼저 받고 투자자들에게 제철 농산물을 보내준다.
산내면 인구 2200여명 중 400여명이 귀농·귀촌인이다. 1990년만 해도 3000명에 육박했던 산내면 인구는 2000년 1900명대로 크게 떨어졌었다. 그러다가 귀농 인구 유입 덕분에 꾸준히 늘어난 것이다. 10여년 전에는 귀농운동본부와 시민단체 ㈔한생명을 중심으로 귀농 인구가 유입됐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운동권 구심점 대신 이미 귀농한 정착민을 통하거나 귀촌인의 지인들이 유입되는 등 이주 창구가 다양화됐다.
마을 여성들이 만드는 자칭 B급 교양 문예지 ‘지글스’ 편집위원인 정상순씨에 따르면 이 마을에 40개 넘는 소모임,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산내면 이주 14년차인 정씨는 이 커뮤니티들을 최근 펴낸 책 ‘시골생활’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20년 가까이 대안교육의 씨앗을 뿌려온 배움의 터전이 있고,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마을 도서관이 있고, 커피숍인지 공연장인지 물품보관소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카페도 있다.”
귀촌의 동기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자녀 교육이 공약수다. 산내초등학교는 지난해 20명에 이어 올해에도 14명의 신입생을 맞이했다. 전교생 98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귀농·귀촌 자녀다. 대안학교인 작은학교는 중·고교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이웃 마을에 역시 대안학교인 산청 간디고와 일반계 거창고도 있다. 아이들이 늘어야 마을에 다양한 직업 수요도 생기고, 인구 증가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향] 지리산 산내면 사람들 이야기
입력 2015-12-15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