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벵거(66·프랑스)라는 무명 감독이 1996년 10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날 FC의 사령탑에 오르자 팬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들 그가 한두 시즌 아스날에 머물다 떠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아스날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정점은 2003-2004 시즌에 찍었다. 당시 아스날은 EPL 최초로 무패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04-2005 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11시즌 동안 6차례나 4위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 시즌 아스날은 부활한 ‘벵거볼’과 대어 영입으로 우승 기회를 잡았다.
아스날은 15일(한국시간) 현재 10승3무3패(승점 33)로 레스터 시티(승점 35)에 이어 리그2위에 올라 있다. 아스날은 2003-2004 시즌 우승 이후 2위-4위-4위-3위-4위-3위-4위-3위-4위-4위-3위를 기록했다. 최근 11년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홈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신축 때문이었다. 약 4억 파운드(7175억원)가 소요된 구장 건립 사업으로 재정이 크게 악화됐다. 결국 아스날은 파트리크 비에라, 데니스 베르캄프(이상 2005년), 애슐리 콜(2006년), 티에리 앙리(2007년) 등 황금세대를 줄줄이 떠나보내야 했다.
아스날이 약화된 전력에도 4위권에서 밀려나지 않은 것은 벵거 감독의 역량 덕분이었다. 그는 한정된 예산으로 최고의 효율을 냈다. 비결은 통계 분석 시스템이었다. 벵거 감독은 소속 선수가 상종가를 칠 때 팔고, 그 돈으로 상종가를 칠 선수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팀을 꾸려 나갔다.
2010년부터 재정 상태가 좋아진 아스날은 서서히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2013년 9월 이적료 5000만 유로(652억원)를 들여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부터 메수트 외질(27)을 데려왔다. 외질은 이번 시즌 리그 15경기에 출전해 2골 13도움을 뽑아내며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FC 바르셀로나(스페인)를 떠나 아스날 유니폼을 입은 알렉시스 산체스(27)도 이번 시즌 14경기에서 6골 2도움으로 제 몫을 하고 있다.
패스와 연계 플레이에 능한 외질과 산체스가 합류하자 ‘벵거볼’이 살아났다. ‘벵거볼’은 팀원 전체가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짧은 패스와 직진 패스로 공간을 만들어 골로 연결하는 것이다. 아스날는 현재 EPL에서 경기당 짧은 패스가 522회로 최다를 기록 중이다. 패스 성공률도 85.3%로 1위다. ‘벵거볼’이 과연 위세를 떨칠 수 있을까? 이번 시즌 EPL의 또 다른 관전포인트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벵거볼’ 살아났다… 아스날, 12시즌만에 우승?
입력 2015-12-15 19:41 수정 2015-12-15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