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정민 “시나리오만 보고도 먹먹”-최민식 "스크린 속 대호에 반했죠"

입력 2015-12-15 18:15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건 등정에 나서는 휴먼원정대의 사연을 그린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을 연기한 황정민. “‘국제시장’과 ‘베테랑’에 이어 3편 연속 1000만 돌파 얘기들 하시는데 그건 오로지 관객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구성찬 기자
조선시대 마지막 호랑이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담은 ‘대호’에서 포수 천만덕 역을 맡은 최민식. “1700만 관객을 돌파한 ‘명량’에 이어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지만 싹 잊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최선을 다해 촬영했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두 사나이 제대로 한판 붙었다. 지난해 여름 ‘명량’으로 1700만 관객을 모은 최민식(53)과 겨울 ‘국제시장’에 이어 올 여름 ‘베테랑’으로 두 작품 연속 1000만 관객을 돌파한 황정민(45). 16일 개봉되는 ‘대호’와 ‘히말라야’로 연말 정면대결을 벌인다. 최민식은 조선시대 마지막 호랑이를 잡으려는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그린 ‘대호’에서 포수 천만덕 역을 맡았다. 황정민은 등반 도중 숨진 동료의 시신을 찾으러 목숨 건 등정에 나서는 휴먼원정대의 이야기를 담은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을 연기했다.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세운 연기파 두 배우의 동시 출격이기에 영화계 최대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황정민을, ‘백성의 그림전-대호’가 열리고 있는 서울미술관에서 10일 최민식을 각각 만났다. 두 배우와의 릴레이 인터뷰를 동일한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재구성했다.

흥행에 대한 얘기는 인터뷰 말미에 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워낙 '빅매치'이다보니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한판 붙는데 흥행 예상은?

황정민(이하 황)="에이, 붙기는 뭘 붙어요? 제가 최민식 옹(翁)에게 어찌 감히. 박정훈 감독의 '신세계'에 함께 출연한 적도 있지만 그 영화 스태프가 모두 제 식구들과 다름없어요. '대호'도 잘 돼야 해요. 흥행은 제 손을 떠난 거라 예상하기 어렵지만 지난여름 '암살'과 '베테랑'이 쌍끌이를 했듯이 '히말라야'와 '대호'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최민식(이하 최)="저도 관객이 얼마나 들지 궁금해요. 하지만 그게 기준이 돼서는 안 돼요. 만드는 재미에 취해야지 관객 수에 취해서 살면 안 되거든요. 500만은 들어야 손익분기점이라는데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준다면 좋겠죠. 황정민이 저더러 '배 좀 집어넣어라'고 했다죠? '웃기지 말라'고 해요(하하). 한해 2억 관객시대이니 그 친구나 저나 다 잘 되겠죠."

-영화에 출연하게 된 동기는?

황="'댄싱퀸'의 이석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았으니 거절할 도리가 없었지만 시나리오에 감동 받았어요. 오로지 동료애 하나로 보상도 명예도 기록도 없는 등정을 감행하는 사람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먹먹해지더군요. 하지 않고는 후회할 것 같았죠. 보기 드문 산악영화라는 점에도 끌렸고요."

최="오래 전 박정훈 감독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는데 주인공(대호)도 없이 찍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어요. 일제강점기 호랑이를 잡는 얘기인데 반대로 호랑이를 지키려고 하는 천만덕이라는 인물에 매료됐지요. 단순히 항일영화가 아니라 암울했던 시대를 살아가는 얘기, 자연과 동물에 대한 예의를 얘기하는 작품이어서 선뜻 응했지요."



한겨울 촬영하느라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대호'는 지리산 등 전국을 누비며, '히말라야'는 히말라야와 몽블랑에서 주요 장면을 찍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황="히말라야 정상이 8000m가 넘어요. 4000m 정도까지 올라갔는데 짐을 나눠서 지고 서너 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예요. 힘들어도 어떻게 해요. 제가 이젠 선배가 됐는데 엄살을 부리지는 못하죠. 놀러 간 거는 아니잖아요. 고산병에 시달리고 위험한 순간도 많았지만 참고 이겨냈어요. 당분간 산 근처에는 가고 싶지도 않아요."

최="눈 쌓인 산비탈을 오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문제는 호랑이도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하는 거죠. 맨땅에 헤딩한 거죠. 시사회 때 주인공 '김대호씨'를 처음 봤는데 정말 그럴 듯한 거예요. 너무 멋있었어요. 두 번 다시 이런 영화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어 감개무량했지요."

-아쉬운 장면은 없나?

황="'산 넘어 산'이라고 항상 아쉬움이 남지요. 엄홍길 대장을 제대로 연기했나 싶고요. 저는 작품을 시작하면 무조건 정도를 걸어요. 이게 제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에요. 이번에도 정직하게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라는 거예요. 산보다 위대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이 있으니 산이 있는 것 같아요."

최="총을 잡는 자세 등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도 있겠죠. 항간에는 호흡이 너무 느린 영화가 아니냐는 얘기도 하던데 그동안 빠른 영화 많이 봤잖아요. 그렇다고 '대호'가 느린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 많아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이라는 메시지를 느긋하게 음미하자는 얘기죠."

'히말라야'에는 정우 조성하 김인권 김원해 라미란 등이 가세하고 '대호'에는 정만식 김상호 정유빈 라미란 등이 함께 출연했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은 어땠나?

황="왜 이렇게 힘들게 산에 오르는지 궁금했어요. 답은 산이 좋아서 오른다는 거예요. 저도 연기가 좋아서 배우가 된 것과 같은 거죠. 불운의 사고로 숨진 박무택 대원 역을 맡은 정우랑 같이 고생은 많이 했지만 다른 배우들도 애틋할 정도로 똘똘 뭉치다 보니 실제 휴먼원정대처럼 동료애와 에너지가 생겼어요. 그런 힘이 '히말라야'에 담겨 있어요."

최="최고의 배우는 대호죠. 대호에게 감사드리고요. 제 아들로 나온 정유빈은 다소 비장한 영화에 유머를 불어넣었죠.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식에 대한 애틋한 심정은 똑 같다는 사실을 유빈이를 통해 얘기하는 거죠. 제가 꾀어서 출연한 정만식과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김상호도 없어서는 안 될 배역이고요."

-가장 하이라이트를 꼽는다면?

황="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눈물과 콧물 찍으면서 보셔야 할 겁니다. '국제시장' 못지않게 울리는 장면이라고들 하네요. 히말라야에서 촬영한 일몰 장면 등은 정말 장관이니 빠뜨리면 서운하겠죠."

최="대호와 제가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이겠죠. 민둥산에 인공나무를 심어 폭파하는 장면은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선사할 겁니다. 대호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지 않으면 절대로 해치지 않고, 도와준 사람에게는 은혜를 갚는다는 설정은 전래동화와 판타지의 결합인 셈이죠."



황정민은 18일 개막하는 뮤지컬 '오케피'의 주인공과 연출을 맡아 바쁘다. 내년 1월에는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 '아수라' 촬영에 나선다. 최민식은 "상투 트는 배역은 '명량'과 '대호' 두 번이나 했으니 차기작은 요즘 살아가는 얘기를 그린 영화"라고 소개했다. 경쟁하면서도 독려하는 두 배우의 선 굵은 연기가 관객들로부터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궁금해진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