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삶의 끝’에서 두려움을 이기다…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입력 2015-12-15 04:10
“이제 자식들에게 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효도라는 이름으로 삶의 마지막 길을 막아서지 말아 달라고.”

유방암 투병 경험이 있는 정창연(55·여)씨는 지난 8월 17일부터 9월 21일까지 6주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서울 영등포남부지사에서 실시한 ‘웰다잉(Well-dying)’ 교육을 받았다(국민일보 8월 11일자 10면 참고). 시범사업인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이었다. 정씨는 교육을 받고 나서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지 분명하게 정했다고 했다.

“교육 전에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치매 걸리면, 많이 아프면, 그냥 밥을 한 숟가락씩 줄여줘’라고 했어요. 막연한 두려움에 죽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줄 알았죠. 이제는 바람직한 죽음 준비가 뭔지 알게 됐어요. 사전의료의향서를 직접, 제대로, 꼭 작성할 거예요. 또 필요한 순간이 오면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할 겁니다. 이 결심이 굳게 섰어요.”

함께 수업을 들은 조현형(75)씨는 연말에 자식들을 만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이 교육받은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이다. 그는 “수간호사 출신이 전해준 병상의 마지막 순간이 참 실감났다”면서 “언젠가 죽음을 맞을 때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조씨는 또 “교육을 받고 나니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친구들에게 이런 교육이 있으면 다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황혼’의 수강생뿐 아니라 20대 참가자들도 죽음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했다. 서울 마포 건보공단 본부에서 교육받은 김정희(20·여)씨는 “죽음이 멀게만 느껴졌는데,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므로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웰다잉과 관련된 입법과 제도가 마련되면서 ‘죽음 준비 교육’ 역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종 과정의 환자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연명의료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내년 3월에는 가정 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실시될 예정이다.

건보공단은 지난 8∼9월 서울 6곳에서 156명에게 웰다잉 교육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126명을 상대로 교육 전과 교육 직후, 교육 종료 한 달 뒤의 의식 변화를 조사해 14일 연구 보고서로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웰다잉 교육은 죽음에 대한 불안과 우울함을 감소시켰다. ‘삶이 가치 있다’는 태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교육 전 이들에게 원하는 임종 장소를 물었을 때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을 고른 사람은 47.2%였다. 이는 교육 직후 64.9%로 증가했고, 교육 1개월 뒤에도 61.7%가 같은 대답을 했다. 교육 전 원하는 임종 장소로 병원을 택한 사람은 9.6%였다. 하지만 교육 직후에는 1.3%만이 같은 대답을 했고, 1개월 뒤에는 아무도 병원을 선택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불안도 줄었다. 연구팀은 '지금 죽는다 해도 별 미련이 없다' 등 6개 질문지를 주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교육 전에는 평균 점수가 2.52점이었으나 교육 후에는 2.34점으로 다소 낮아졌다. 우울감을 비슷한 방식으로 측정했을 때도 0.73점에서 0.24점으로 내려갔다.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 33개를 던져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평가한 점수는 3.05점에서 3.29점으로 높아졌다. 주관적·객관적 건강상태를 물었을 때도 교육 후에 더 높은 점수가 나왔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기본 지식이 늘어나는 효과도 거뒀다. 예컨대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은 종교시설인가'라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한 사람이 교육 전 59.5%에서 교육 후엔 73.9%로 증가했다.

건보공단 연구팀은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죽음준비 교육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죽음준비 교육을 총괄할 수 있는 사단법인 형태의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면서 "이곳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점검·발전시키고 전문 강사를 교육·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기석 전수민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