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첫 국립현대미술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어떤 검열도 반대, 표현의 자유 보장할 것”

입력 2015-12-14 19:24

‘나는 어떠한 검열도 반대한다.’

스페인 출신의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49·사진)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뒤에 설치된 파워포인트 화면에 쓰인 문장이다. 향후 3년 임기 동안 지킬 ‘가치와 약속’ 중 가장 우선순위에 내세운 것이다. 한국 미술계의 학맥·인맥 간 파벌 싸움을 종식시킬 ‘미술계 히딩크’로 영입된 마리 관장이 14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글귀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이날 공식 임명장을 받기까지 그의 발목을 잡았던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장 재직 당시 전시회 검열 논란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해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기관장으로 외국인이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검열 논란, 의사소통 문제, 한국 미술에 취약한 전문성 등 ‘약점’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정면 돌파하는 방식은 노회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했지만 왕초보 수준의 발음이다. 그럼에도 “1년 안에 비록 어눌하더라도 한국어로 작가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네덜란드현대미술센터(1996∼2001) 재직 때도 1년 안에 네덜란드어를 배운 경험이 있다고 했다.

검열 전력에 따른 미술계 반대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술가 옆에서 동반자처럼 일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의견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자연스러운 속성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를 갖고 판단하지 말고 한국에서 앞으로 하는 일의 결과를 보고 판단해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운영 청사진과 관련해서는 “콘텐츠에 집중하는 관장이 되겠다”며 자신을 ‘큐레이터 관장’이라고 정의했다. 글로벌 네트워킹 자산을 발판으로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한국 세일즈’보다는 전시 기획에 깊숙이 관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따라서 한국 미술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리 관장은 ‘한국 미술 숙제론’으로 앞으로 제기될 비판을 미리 막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근·현대미술 간의 문맥이 연결이 안 돼 내러티브(이야기가)가 없고, 그래서 외국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유능한 작가들의 뛰어난 작품은 많지만 이걸 집합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링크가 없었는데 제가 찾아 해외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외국 모델을 수입하지 않고 최대한 새로운 걸 창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나는 그 어떤 검열도 반대한다. 작가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항상 동반자처럼 상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