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배석의원 없던 탈당 기자회견

입력 2015-12-14 17:37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은 폭발적 이슈였다. 야권이나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도 그렇지만 지난 대선에서 혜성처럼 떠올랐던 대통령 예비후보의 행보 측면에서도 근래 들어 가장 주목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13일 탈당 기자회견에 배석한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안 의원만 나와 총총히 발표문을 읽고 질의응답도 없이 퇴장했다. 제1야당을 공동 창립한 이후 그가 1년9개월 남짓 걸었던 길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적표’와 같은 풍경이었다.

21개월이라면 결코 짧지 않다. 그간 그는 공동 당대표를 지냈고,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 선거 같은 큼직한 선거를 치렀다. 세월호 참사나 청와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 메르스 사태 등 야당에 호재인 굵직한 사건도 많았다.

그러나 안 의원은 자기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정치행위도 별로 없었다. 민주당과 통합할 때 많은 지지자를 잃고 시작한 터였지만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최측근이었던 금태섭 변호사를 비롯한 동지와 후원자 여럿이 떠났다. 공천이 관철된 인물로는 윤장현 광주시장 정도다.

두 차례 선거의 책임을 지고 4개월 만에 당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오래 은둔했다. 1년 만에 국정원 해킹의혹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지만 발군의 활약은 없었다. 당내 주류와 비주류 사이 모호한 입장을 취해 여러 세력들과 거리감만 늘렸다.

대여 공세에서 절제하고, 지역구민에 대한 약속을 중시하는 모습을 선보이긴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합동조사단 기자회견장 출입을 거부당했던 광경은 국민들 뇌리에 남았다. 정치적 책임과 신뢰를 중시하고 군림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신선하긴 했다. 하지만 깃발을 들고 험로를 앞장서거나 폭넓은 소통으로 저변을 넓혀나가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1920년대 문인 박영희가 신경향파에서 탈퇴하며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지만 안 의원의 지난 21개월은 ‘신념을 지켰지만 사람을 잃은’ 형국이다. ‘다시, 두려움을 안고 광야에 서서’란 탈당 회견문에서 그는 “허허벌판에 혈혈단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벽 앞”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사람을 모으기보다 주로 떠나보냈던 저간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참담하다 싶은 성적표가 그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다. 버락 오바마 같은 초선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되고,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인물에게까지 기회를 부여하는 정치체제는 요원하다. 계파를 중시하고 그 이해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 정치풍토 속에서 운신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변명이 될 수 없다. 정치이념을 실현할 구체적 대안의 부족이나 주변인물을 소진한 책임은 스스로에 있다.

광야로 나선 그에게 급선무는 사람을 모으는 일일 것이다. 옛 동지를 얼마나 다시 규합할 수 있을지, 지지층들을 어떻게 재결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사람이 있어야 구심력을 갖고 정치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찾아가 소통하고 들어주고 챙겨줘야 한다. 큰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라면 정적과도 협상해야 한다. 이념뿐 아니라 정치역정의 고락까지 나눌 수 있는 동지들을 구해야 한다. 필요하면 흙을, 때론 피까지 손에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 지향점이 분명하더라도 현실성이 없으면 반향이 없고, 반향이 있더라도 사람이 없으면 결국 신념을 지킬 힘마저 잃게 된다.

안 의원은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의 삶을 돌보는 새로운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우선 사람을 모으고 지키는 일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