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진(41) 천안 ‘쉼이되는교회’ 목사는 강원도 동해시 출신으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에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는 장애를 안고 있는 형을 돌보느라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심 목사는 고교 시절 동부중앙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에게 교회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메울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1995년 동해대학 사무자동화과에 입학한 심 목사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을 벌었다. 게다가 어머니도 모셔야 했다. 주유소 야간당직, 신문배달, 막노동 등을 하며 어렵게 학교를 졸업하고 게임 개발회사에 취직해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일상적인 직장생활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심 목사는 2002년 침례신학대학교에 편입학했고 2004년 졸업 후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5년간 장애우들을 돌봤다. 그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났다.
2009년 수원의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섬기던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교회를 개척한다’는 원칙을 붙들고 가정교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1년 7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남 천안시 두정동 상가 건물에 쉼이되는교회를 개척했다.
고난은 아내가 출산 1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됐다. 갑자기 아내의 간수치가 급격하게 올라가 유도분만으로 2.2㎏의 미숙아를 출산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딸은 두 돌이 지나서야 힘겹게 걸을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도 늦었다. 아내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심 목사는 아이를 돌보면서 교회사역을 감당했다. 육체적·정신적 탈진이 엄습했다. 열심히 뛰어 다녀도 임차료를 마련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결국 2013년 11월부터 7개월간 상가 개척교회에서 가정교회로 전환했다. 그렇다고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첫째 아이의 언어치료, 사회성 훈련 비용이 매달 40만원이 들어갔다. 지난해 5월 다시 교회를 개척하는 심정으로 상가건물을 임차했다.
그는 둘째를 출산한 아내가 일을 그만두자 야간에 택시 세차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오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55대의 택시를 세차했다. 얇은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덧끼고 세차를 하면서 손이 쩍쩍 갈라졌다. 하루하루가 추위와 싸워야 하는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전도활동을 하고 밤에 일을 하다 보니 생활리듬이 깨지고 양 팔꿈치에 강한 통증이 왔다. 팔을 쓰지 말라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올해 초 세차일도 그만뒀다.
심 목사는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절약과 저축에 힘썼지만 교회 개척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서 “목회자일지라도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게 고달프다”며 한 숨 쉬었다. 그러면서 “일하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성도들에게 일부러 알리면서까지 할 만한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교회는 보증금 1500만원에 월 임차료 30만원을 낸다. 성도 5명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통기타와 우쿨렐레 무료교실을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심 목사는 “마음에 계속 걸리는 것은 여섯 살짜리 딸아이에게 조금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라며 “그게 이 세상 부모의 똑같은 마음 아니겠나.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자꾸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을 주고 계시는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어려운 교회를 도웁시다-천안 쉼이되는교회] 낮엔 전도, 밤엔 알바 … 다섯 성도와는 고난 극복 한계
입력 2015-12-14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