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Fluechtlinge)’이 11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로 꼽혔다. 독일어협회가 올 한 해 정치·경제·사회 사건 관련 낱말 약 2500개를 심사한 끝에 뽑은 단어다. 시리아 사태에서 비롯된 난민 수용 문제가 그만큼 유럽, 특히 독일에서 치명적인 이슈였다.
지난 8월 난민 문제가 유럽의 이슈로 떠오르자 독일은 적극적인 포용 정책을 발표했다. 철의 여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방황하던 난민들이 독일로 대거 몰려들었다. 독일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은 이달 들어 100만명을 넘어섰다.
예상보다 빠른 난민 유입 속도는 그만큼 반대 여론도 키웠다. 몇 달 전만 해도 4선(選) 연임도 가능할 것 같았던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낮아졌다. 냉철한 원칙주의자로 유명한 메르켈조차 자신이 밝혔던 ‘무조건적 수용’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난민 관리 강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독일이 난민 수용 정책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저출산으로 인해 이미 인구가 줄고 있는 독일에서 난민 수용은 장기적 재정과 노동력 부족을 채울 경제정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지맞는 난민 수용=메르켈 총리는 지난 8월 “내전 상태인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에 한해 무제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메르켈이 선별적이지 않고 무조건적인 외국인 유입 정책에 대한 정치·사회적 반발을 예상 못했을 가능성은 낮다. 이미 독일이 과거에도 수차례 경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포용한 배경에 세계 언론 등의 관심이 집중된 것도 같은 이유다. 유럽에서 그나마 탄탄한 재정을 가진 독일이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책임론이 대외적 이유였다면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를 해소할 대책으로 난민을 받아들였다는 내부적인 이유가 있었다.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간한 ‘인구 감소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100년까지 인구가 감소 추세에 들어서는 국가가 지구촌의 7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노년층 의존 비율도 2015년 12%에서 2100년 38%로 증가할 전망이다. 생산활동에 참가하는 15∼64세 인구 대비 65세 인구의 비중이 크게 높아져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국가의 재정 부담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주요 경제 기구나 이코노미스트들은 난민 수용이 저성장 침체기를 걷고 있는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유럽 전반이 겪고 있는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이민 유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CS)에 따르면 난민에 대한 식료품· 의복 지급이나 수용소 제공 등에 따르는 정부지출조차 경제 전체에는 긍정적 효과가 된다. CS는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난민을 위한 정부지출이 내년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성장률을 0.2∼0.3% 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CS는 또 빈손으로 넘어온 난민들의 소비 가능성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CS는 “난민의 생필품에 쓰인 돈은 거의 전부 경제에 다시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도 “난민들에 대한 투자 및 이들의 소비가 내년도 독일경제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도 이민·난민 수용은 필요한 조치로 꼽히고 있다. CS는 난민 수용 등을 통해 유럽연합(EU) 내 노동 공급이 확대되면 2015∼2023년 유로존 성장률에 대한 노동 기여도가 EU 집행위 예상의 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 경제기구들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열린 WB·IMF 연차총회에서 발표된 ‘글로벌 모니터링 리포트 2015/2016: 인구변화 시기의 개발 목표’ 보고서도 “세계적 노령화 추세가 진행되는 가운데 모든 개발 단계의 국가들이 난민·이민 등의 인구 변동을 거대한 개발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반(反)이민 여론 극복이 관건=그러나 어느 정부도 난민·이민 수용 정책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특히 전 세계적인 저성장으로 인해 각국이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면서 국민 여론은 이민정책에 갈수록 부정적이 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활동을 하고 세금을 내줄’ 노동력인 이민자를 원하지만 일자리 부족을 겪는 국민들에게 이민자는 당장 사회불안을 높일 성가신 존재이자 노동력 시장에서 일자리를 뺏는 경쟁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유입이 예상보다 폭발적이거나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경우엔 애초 예상한 경제적 효과조차 얻기 힘들다는 반론도 나온다. ‘무조건적 난민 수용’을 내세웠던 독일도 예상보다 폭발적인 난민 유입 속도 때문에 난민 신분증 발급을 추진키로 했다. 앞으로 밀려들어올 예비적 난민이 40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추정도 유럽 내 불안감을 높이는 요소다.
상대적으로 후진국에서 몰려드는 외국인이 국가경제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낮은 임금의 단순 노동력이 빠르게 유입될 경우 저소득층의 삶이 위협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언어 문제나 사회·문화적 갈등도 위험 요소다. 9일(현지시간) 유로저널에 따르면 독일 건설업계는 “3년 이상 직업교육을 받은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며 난민을 바로 고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에릭 슈바이처 독일 상공회의소(DIHK) 대표도 지난 8일 DPA 통신에 “노동시장 통합에 대한 정부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슈바이처는 “대다수 이민자의 언어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독일어를 하지 못하면 (구직)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난민들이 사회·문화적으로 제대로 통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슈바이처 대표는 “상의 차원에서 노동시장 통합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데 내년에만 2000만 유로(256억 원)가 들어갈 것”이라면서 “통합이 되기까지 7∼10년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월드 이슈] ‘늙은’ 독일의 계산, 난민=경제효과
입력 2015-12-15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