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금까지 뭐하다… “시간강사법 유예” 대학가 혼돈

입력 2015-12-14 04:10

정부와 여당이 ‘시간강사법’을 2년 더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대학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취지와 달리 이 법 때문에 강사들이 대량 해고 위기에 몰리자 3년간 미뤄 온 시행을 더 미뤄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침은 시간강사법 시행을 불과 보름여 앞두고 뒤늦게 공식화됐다. 이미 ‘시간강사 구조조정’의 신호탄은 쏘아 올려진 상태다. 대학가는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대학과 강사들은 “지금까지 뭐하다…”라며 ‘주먹구구식’ 정책을 성토했다.

교육부는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지난 11일 대표 발의한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강사법)이 올해 임시국회에서 통과돼 내년 1월 1일 전에 시행되길 바란다”고 13일 밝혔다. 강 의원의 개정안이 정부안이라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개정안에는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시간강사법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시간강사법은 2010년 조선대 강사 고(故) 서정민씨의 자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강사에게 교원 지위인 강사직을 주고, 1년 이상 임용하며, 주당 9시간 이상 강의를 전담케 하고, 4대 보험 적용을 보장해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럴 경우 학교의 비용 부담이 커진다. 대학들은 시간강사를 줄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대학들은 강사 처우를 개선하는 대신 기존 교수와 일부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고 종전 강사들과는 계약을 해지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2013년 1월 1일자로 시행될 예정이었는데,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자 2016년 1월 1일로 시행이 미뤄졌었다. 정부는 법 시행을 유예할 당시 “유예기간 중에 대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뒤늦게 ‘유예 카드’를 꺼낸 것이다.

대학들은 혼란에 빠졌다. 1300∼1400명 시간강사를 둔 서울대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음악대학의 경우 이미 지난 2일 시간강사 구조조정을 위한 ‘신규 강사 채용’ 공고를 냈다. 공고문에 명시된 계약기간은 시간강사법이 정한 ‘1년’이었다.

이 법과 무관하게 채용이 이뤄진 지난해까지 시간강사는 최대 5년간 강의가 보장되는 관행이 있었다. 이번엔 공고문에 그 관행이 사라질 것임을 밝힌 것이다. 한 강사는 “(서울대는) 관행적으로 5년 계약이 보장돼 왔고 국립대의 대표 격이라 다를 걸로 기대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대 음대는 현재 총 114명의 강사가 강단에 서고 있다.

서울대는 법 유예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강 의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채용공고를 다시 낼지, 취소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육부가 지난달 ‘바뀌는 강사법에 미리 대비해 달라’고 요구했고, 시행 유보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며 “예산 추가 지원 없이 강사 현원을 유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예술계열뿐 아니라 현장 실무 비중이 커 강사를 많이 뽑아야 하는 학과들은 정부·여당의 유예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강사들은 재계약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할 전망이다. 영남지역 사립대의 한 강사는 “법 시행 직전에야 유예를 추진한다는데, 이미 일자리를 잃은 분들은 어떻게 할 거냐”고 비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