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카펫, 할리우드 스타,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전 세계에서 몰려온 팬들의 환호…. 독일 베를린의 번화가인 소니센터에서는 매년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영화제 개막식 때면 소니센터 한가운데 포츠담 광장에 빨간 카펫이 깔리고 전 세계 영화인들이 모여든다. 소니센터 한쪽에는 개막식이 열리는 베를리날레 팔라스트(베를린 극장)가 있고, 영화박물관도 있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베를린에서만 3만명이 넘는다.
독일을 자동차와 기계를 잘 만드는 나라로만 보면 큰코다친다. 문화예술을 산업으로 진흥시키는 ‘문화-창조경제 이니셔티브’와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는 ‘인더스트리 4.0’으로 이미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창조경제를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베를린 영화제가 1951년 6월 처음 열렸을 때는 동유럽 영화를 다수 초청해 동서 화합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당연히 분단된 독일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독일 국민들은 성원했다. 프랑스 칸, 이탈리아 베니스와 함께 3대 영화제로 불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이고 논쟁적이면서 격조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회적인 주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고 비평가들의 논쟁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이제 베를린 영화제는 통일 독일의 문화예술산업을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있다.
독일은 2007년부터 문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문화-창조경제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이듬해 유럽을 휩쓴 금융위기는 오히려 독일 문화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됐다. 당시 자동차 화학 등 다른 제조업 분야는 30% 이상 위축되는 타격을 받았지만 문화산업은 수익을 더 늘렸다. 문화영상 분야가 미래 주요 산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독일 정부는 관련 분야의 예산을 늘려가며 영화 영상 광고 건축 등의 지원을 늘려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를린 영화제를 기반으로 영상산업 전반을 유치하는 ‘레디 액션(Klappe und Action)’ 프로그램이다. 베를린 시청은 “매년 300편이 넘는 영화들이 베를린과 인근 지역에서 촬영되고 있다”며 “베를린 영상산업은 연간 10%가 넘게 성장해 약 3500개의 관련 기업에서 3만6600명이 종사하고 있고 산업 규모는 연 26억 유로(약 3조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독일은 베를린 영화제를 영상산업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인근에서는 1년 내내 관련 전시회가 열리고, 촬영 조명 미술부터 후반 작업과 배급, 비평까지 영화산업의 전방과 후방을 모두 아우르는 체제를 갖춰가고 있다.
문화영상 산업의 핵심은 창조적인 인재다. 베를린 영화제는 창조적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영화제의 주제를 내세운 다양한 토론회와 강연회, 심지어 미술전시회도 개최하고, 홈페이지에서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베를린 영화제를 통해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와 베를린에서 스타가 된 배우가 베를린을 영화 도시로 선전한다. 어린이영화제와 청소년을 위한 영화제작 워크숍, 영상 관련 창업을 위한 자금 대출과 법적 자문 등 영상산업의 인재를 기르고 지원하는 다양한 루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노력은 문화예술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인구 340만명의 베를린에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2만1000여명의 전업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문화산업 종사자는 16만명에 이른다. 베를린 주정부는 연 예산의 40%를 교육·문화·과학 분야에 쓴다.
베를린 영화제의 이 같은 산업 효과는 아시아 영화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 최대의 영화제인 부산 국제영화제의 경우 관련 산업의 취업 인원은 1500여명, 총생산유발액은 766억원 수준이다. 이 정도만 해도 국내에서는 굴지의 성과지만 베를린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부산발전연구원은 “부산 국제영화제도 축제 중심의 이벤트에서 영화·영상산업 육성으로 정책 방향 전환을 고민하면서 영화 촬영도시, 후반작업기지 조성 등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친기업 중심 법제와 세제혜택 제공 등을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영화·영상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게임·애니메이션 등을 육성할 방안과 지원책을 강구할 때”라고 지적했다.
베를린 영화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 도시라는 약점을 오히려 정치적 논쟁의 출발점으로 삼아 다양한 영화적 담론을 생산하는 장으로 키운 점도 눈길을 끈다. 부산 국제영화제가 최근 정치적 논란으로 집행위원장 체제가 흔들리는 등 오히려 활발한 토론이 위축된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독일 시리즈 Ⅱ] 베를린영화제 3조원 vs 부산국제영화제 766억 … 문화산업 브랜드 키워야
입력 2015-12-13 1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