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손병호] ‘먹방’보다 ‘먹는 문제’ 신경을

입력 2015-12-13 18:27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일즈 외교에 있어서만큼은 ‘올해의 인물’로 꼽힌다. 연중 내내 아시아와 유럽을 누비며 ‘인도에서 만들라(Make in India)’는 캐치프레이즈를 설파하며 다국적 기업들의 인도 유치에 앞장서 왔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역시 ‘세일즈 순방’으로 영국 아르헨티나 케냐 등에 원전 수출을 성사시켰고,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속철 건설권을 따냈다. 지난 주말 인도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인도 최초의 고속철을 일본 신칸센으로 건설한다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아베 총리는 고속철 이외 원전과 방산 수출에서도 크고 작은 성과를 내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글로벌 큰손’인 중국의 인권 문제에 잠시 눈을 감는 대신 항공기 수출 등을 성사시키며 실속을 챙겨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굵직한 해외수주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또 유럽과 일본 등이 경기부양책을 앞다퉈 내놓았지만 국내에서는 국민 피부에 와닿는 부양책도 별로 없다.

중국과 일본이 자국산 민간 여객기 개발을 마치고 양산체제로 돌입하는가 하면 금성 탐사선을 성공리에 궤도에 앉히고(일본), 우주정거장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지만(중국) 우리에게선 국민들에 자긍심을 주는 과학기술적 진전 소식을 들어본 지도 오래전 일이 됐다. 이전 정권들에서는 국민을 결집시킬 수 있는 대규모 국제행사나 스포츠행사 유치 소식도 종종 들렸지만 요즘은 그런 소식들도 드물어졌다.

이런 침체 분위기는 민간부문도 마찬가지다. 요즘 대기업들에선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뜸해졌다. 또 해외 시장을 주름잡는 ‘킬러 상품’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일부 있던 킬러 상품들도 이젠 경쟁력을 잃고 있다. 대신 일부 대기업에선 벌써부터 ‘사람 자르기’가 시작됐다.

다가오는 새해 경제 전망은 우리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경제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내년 세계경제는 잘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의 차별화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내년 성장률이 올해(3.1%)보다 약간 더 좋아져 3.4% 정도로 예상되는데 올해와 마찬가지로 미국, 인도, 유럽, 일본이 그 성장을 독차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내년 중국 경제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연 6.8%인 중국의 성장률이 내년 6.3%에 머물고, 중국 의존도가 큰 아시아와 남미 국가들의 고통이 커질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경고했다. 당장 우리나라부터 힘든 한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사회의 담론은 야당의 ‘탈당’ 문제, 여당의 ‘친박·비박’ 대립, 해묵은 법안처리 문제 등 정치권 얘기나 불법시위 논란에만 쏠려 있다. 정치권과 사회 리더들이 이러는 사이 TV들은 ‘요리 얘기’에만 푹 빠져 있다.

지금은 대통령부터 장차관들까지 세일즈 외교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해외 대사관이나 국가정보원도 ‘수주 정보전’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나서 경제를 자극시킬 ‘성장 드라이브’를 찾아내야 한다. 아울러 저성장이나 일자리, 해외수출, 기업 경쟁력, 과학기술 등의 주제를 놓고서도 사회적 담론이 활발히 형성돼야 한다. 만약 지금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한때 잘나갔던 한국경제가 ‘소리 없이’ 주저앉을지 모른다.

손병호 국제부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