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반려견의 가족이 된다는 것

입력 2015-12-13 17:56

내가 처음으로 반려견의 엄마가 되었던 것은 21세기가 시작된 해였다. 지금 돌아보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엄마’에다가 ‘아이와 같이 자라지 못한 엄마’였다. 그저 ‘아이의 맹목적 사랑과 전폭적인 신뢰만 받았던 엄마’였다.

우리 가족이 가는 방방곡곡 여행에 동행했던 것 외에는 제대로 한 것이 별로 없다. 어릴 적 사교성을 키워주지 못했고, 식탐에 무방비였고, 하루 한 번씩 운동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 눈에 빠졌었고, 나의 손길에 부드러워지는 그 느낌이 좋았고, 나랑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사랑스러워만 했고, 완벽하게 나를 믿는 그 충정에 감복하기만 했다. 약해지는 노후를 전혀 몰랐고 보살펴줘야 하는 노후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그리고 십년 만에 큰아이는 홀연히 가버렸다.

지금 같이 사는 두 아이에 대해서는 준비된 엄마, 같이 자라는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가족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한 아이는 길에서 만나 운명적으로 가족이 되었고, 다른 아이는 강아지일 적에 유기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했다. 둘은 같이 뛰어놀며 곧잘 싸우기도 한다. 엄마의 사랑을 먼저 받으려고 질투도 하지만 동지가 되어 서로를 아껴주며 의지하기도 한다.

강아지에게도 엄마만이 아니라 아빠도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아빠가 같이 달려주면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엄마 아빠를 운동시켜주는 강아지들의 존재에 감사한다. 우리가 늙어가듯 아이들도 늙어감을 알고, 우리가 건강을 조심하듯 강아지들도 각별히 노후를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가 몸뿐 아니라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하듯 강아지들도 몸과 마음을 잘 조절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강아지들의 가족이 된다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과도 가족을 이룬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가족을 이루면 비용도, 노동 강도도 커진다. 하지만 가족 느낌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이 ‘가족감’은 삶을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