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은 내년에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간판 레퍼토리 중 하나를 신작으로 내놓는다. 2014년 2월 강수진 단장이 취임한 이후 국립발레단은 같은 해 10월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존 테틀리의 ‘봄의 제전’, 지난 4월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한 데 이어 내년 11월 마르시아 하이데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사진)를 무대에 올린다. 테틀리, 크랑코, 하이데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숄츠는 무용수로 활약했다. 국립발레단이 갈라 공연에서 선보인 소품(小品)들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강 단장이 친정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레퍼토리만 가져온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국내에는 작품성 있는 전막 발레를 만들 수 있는 안무가가 없다보니 해외에서 검증된 작품을 라이선스로 사와야 한다.
그런데 유명 안무가의 작품을 라이선스로 가져오려면 저작권을 소유한 재단이나 해당 무용단의 허가를 받아, 공연을 확정짓기까지 국제 관행상 3년 정도가 걸린다. 저작권 계약은 보통 3년 단위로 하고 이후 갱신한다. 안무가에게 신작을 의뢰하려면 5년 이상 걸리며 공연할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 예술감독의 임기가 3년인데다, 미리 뽑지도 않는 국립발레단 입장에서는 좋은 레퍼토리를 축적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국립발레단의 현재 레퍼토리 리스트는 과거 최태지 전 단장 시절 대부분 채워진 것으로, 러시아 발레의 거장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도움이 컸다. 국립발레단은 그리가로비치의 지도 아래 2000년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이듬해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를 만들었다. 자신을 초청해 정성을 다한 최 전 단장과 국립발레단을 좋아하게 된 그는 국내 공연에선 아예 저작권료를 받지 않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그의 ‘라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라이몬다’의 안무도 받았다. 볼쇼이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30년간 군림해 온 그가 한국에 올 수 있었던 건 개방 물결 속에서 단원들의 비판을 받아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후 김긍수 전 단장과 박인자 전 단장 시절 각각 루돌프 누레예프 안무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마츠 에크의 ‘카르멘’ 등을 새롭게 무대에 올리긴 했지만 국제 무용계에서 발레단의 위상을 보여주는 고정 레퍼토리 축적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최 단장은 6년씩 두 차례 12년간 예술감독을 역임한 덕분에 그나마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임기 3년 동안 시스템 부재 속에 장기적 관점에서 운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 단장의 경우 유럽에서 30년간 활약해온 만큼 네트워크는 만만치 않지만 장기 계획을 세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있어 발 빠르게 작품들을 가져올 수 있다. 대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저작권 계약 기간을 강 단장이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을 할 때까지로 한정했다.
발레계 관계자는 “국립발레단은 언제까지 시스템이 아닌 예술감독의 개인 역량에만 의지할 것이냐”며 “예술감독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장지영 기자
강수진의 국립발레단이 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작품 선택한 이유…
입력 2015-12-13 18:47 수정 2015-12-16 1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