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복마전 같은 공공 예술단체 문제 해결 못해 죄책감”

입력 2015-12-13 18:50

이종덕(80) 충무아트홀 사장이 내년 1월 15일 퇴임식을 갖고 공연 현장에서 은퇴한다. 이 사장은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당발이자 예술행정의 산 증인이다. 1963년 문화공보부에서 시작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서울예술단 이사장, 예술의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성남아트센터 사장 등을 지냈다.

당초 2010년 11월 성남아트센터 사장을 끝으로 현업에서 물러날 예정이었다. 친분 있는 예술계 인사들과 퇴임식도 치렀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충무아트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일면식도 없는 서울 중구청장이 찾아와 사장 자리를 맡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3년 임기를 채운 그는 1년씩 두 번 연임했다. 재직기간 충무아트홀은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대히트를 기록하는 등 자타공인 지역 공공극장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11일 충무아트홀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나도 양심이 있다. 80세를 넘겨서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 안 될 것 같다. 이번엔 진짜 은퇴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반평생 예술가를 지원하며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며 “이제는 봉사활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한다”고 밝혔다.

‘공연계의 대부’ ‘예술행정의 귀재’ ‘인맥의 황제’ 등 별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삶은 한국 공연예술의 성장사 그 자체다. 문공부 시절이던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던 정명훈에게 김포공항에서 광화문까지 카퍼레이드 길을 열어주고, 세종문화회관 사장이던 2002년 강수진이 주역으로 있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내한공연을 성사시킨 일 등은 지금도 회자된다.

예술행정가로 살아오면서 스스로 내세우는 업적은 무엇일까. 공연계에선 추진력과 결단력으로 공공극장 활성화에 앞장선 걸 높이 평가하지만, 그는 극장에 후원회를 만든 것을 가장 먼저 꼽았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에 후원회를 개설해 가장 먼저 가입한 뒤 지인들의 가입을 유도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선 개인 또는 기업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있으며 전국공공극장연합체인 한국문예회관연합회를 설립한 일도 보람으로 들었다. 그는 “서울예술단을 이끌고 지방공연을 다닐 때 지역 문예회관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체감했다. 연간 공연예산이 한 푼도 없는 지역 문예회관도 적지 않았다”면서 “이후 지역 문예회관이 한국문예회관연합회 도움으로 조금씩 활성화되는 걸 보면서 기뻤다”고 말했다.

반면 공공 예술단체 노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했다. 그는 서울시 사업소 소속에서 재단법인으로 바뀐 세종문화회관의 첫 번째 사장으로 부임해 노조와 갈등을 겪었다. 취임 일성으로 오디션을 통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내보내겠다는 했고, 실제로 서울시향 연주자 9명을 해고했다. 이에 노조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이들이 소송을 제기해 사측이 패소했고, 3년 동안 오디션을 봐서 합격하지 못할 경우 해고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후 9명은 결국 오디션에서 합격하지 못했다”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예술단 단원들이 예술을 등한시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문화회관 노사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 출발한 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겸 성남아트센터 사장으로 떠났다. 성남시에서 산하 시립단체를 성남아트센터로 이관하자고 했지만 거절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쓰라린 경험 탓이었다.

그는 “현재 공공 예술단체 대부분이 방만하게 운영되면서 공공성과 예술성을 갖추지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거 이들 단체를 설립할 때 공무원들이 예술에 대한 이해 없이 공무원 조직처럼 만든 게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또 “문화예술계에서 ‘거목’이란 소리를 들으며 나이를 먹었지만 복마전 같은 공공 예술단체 문제에 대한 죄책감이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비록 현장에서는 은퇴하지만 공연계를 완전히 떠나진 않는다. 올봄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원장 겸 석좌교수에 임명된 그는 내년부터 학생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는 예술경영을 가르칠 예정이다.

글 장지영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yjang@kmib.co.kr

주요 이력

1983년∼1987년:한국문예진흥원 상임이사

1988년∼1993년:88서울예술단 단장

1994년∼1995년:서울예술단 이사장

1995년∼1998년:예술의전당 사장

1999년∼2002년:세종문화회관 사장

2004년∼2010년:성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겸 성남아트센터 사장

2011년∼2015년:충무아트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