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조모(23·여)씨는 지난 2일 오전 7시 서울 영등포구 한 프랜차이즈 카페 앞에 줄을 섰다. 이 카페는 일본 명품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한정판 컵과 보온병을 이날 출시했다. 조씨는 출근시간 훨씬 전에 움직였지만 이미 10여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가게 문이 열리고 차례가 돌아오자 조씨는 90만원을 바로 결제했다. 개당 2만7000∼3만8000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에도 제품은 출시되자마자 모든 지점에서 ‘완판’됐다.
컵과 보온병을 90만원어치나 살 이유가 있었을까. 조씨는 11일 “블로그와 중고거래 카페를 통해 수수료 명목으로 10∼20%를 얹어 재판매(리셀)하고 있다”며 “이미 절반 이상은 팔았고, 계속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조씨처럼 한정된 제품을 사들인 뒤 다시 파는 이를 ‘리셀러(Reseller)’라고 부른다. 이들은 어느새 유통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부에선 이들을 구매대행업자로 평가한다. 반면 물건을 싹쓸이하거나 독점하면서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난도 공존한다.
리셀러는 주로 한정판이나 세일 상품, 아울렛 제품에 주목한다. 약간의 시간과 품을 팔아 한정제품을 빠르게 선점한 뒤에 수요 추이를 지켜보면서 웃돈을 얹는 식이다. 4년째 아울렛에서 파는 의류를 사들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판매하는 A씨(42·여)는 “제품 가격의 10%와 배송비를 따로 붙여서 판다”며 “직접 매장에서 물건을 사기 힘든 다른 지역의 고객이나 쇼핑시간이 빠듯한 직장인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1주일에 20∼30명이 A씨가 내놓은 제품을 사간다.
유통업체 입장에서 리셀러는 ‘계륵’이다. 한 아울렛 관계자는 “리셀러의 ‘싹쓸이 행태’ 때문에 일반 고객의 구매 폭이 좁아졌다”며 “이들이 대량 구매해 유통하는 제품의 수량이 만만찮다 보니 막을 수도 없다”고 했다. 최근 일부 업체는 리셀러의 독점을 막기 위해 품목당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을 제한하기도 한다. 이러자 매일 매장에 들러 ‘출근도장’을 찍는 리셀러가 있다고 한다.
리셀러의 등장으로 유통질서가 엉키면서 일반 소비자의 구매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발 빠르게 물건을 챙겨가는 통에 원하는 제품을 사기 쉽지 않다. 리셀러를 거치면 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가기도 한다. 교환이나 환불은 꿈도 못 꾼다. 현행 제도로는 리셀러의 수익에 대해 과세하기도 어렵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하나의 유통채널이 마련돼 유통구조가 다양화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거래과정에서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기획] 한정판 등 웃돈 얹어 되파는 ‘리셀러’ 논란… 돈 되는 상품 싹쓸이 ‘신종 사재기’
입력 2015-12-1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