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매서 돌풍 ‘단색화’, 시작은 1975년 일본展… ‘미술계 대세’ 단색화, 궁금한 5가지

입력 2015-12-13 17:32
권영우의 ‘무제’, 1984년 작. 한지에 묵, 과슈. 회화처럼 보이지만 한지를 자르고 찢은 뒤 이어붙인 것이다. 국제갤러리 제공

이론적 버팀목이 없는 미술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최근 2년 사이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 받는 단색화에 대한 학술적 조명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예술연구소(소장 김미경 강남대 교수) 주최로 지난 5일 서울 홍익대에서 열린 ‘단색조 예술의 미학과 사회사’ 심포지엄은 그런 면에서 반갑다. 김 소장은 “상업논리가 만들어낸 거품이라는 식으로 견제하자는 게 아니다”면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가 뒤받침 돼야 단색화도 일본의 구타이, 모노하처럼 미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지속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포지엄 내용을 Q&A방식으로 재구성했다. 김 소장의 ‘한국 단색조 예술의 정치 사회사’, 김찬동 경기문화재단 본부장의 ‘단색화의 정신적 연원’, 박창서씨의 ‘수행(遂行)과 수행(修行)사이의 예술적 의도’ 등을 참고했다.

①단색화 전시의 기원

일본 도쿄화랑에서 1975년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흰색전’이 시발점이다. 큐레이터 나카하라 유스케는 당시 한국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공통분모의 하나로 ‘중간색을 사용한 델리케이트한 화면’을 추출하면서 특히 백색을 빛깔을 넘어선 정신으로 보았다. 전시에는 박서보·허황·이동엽·서승원·권영우가 참여했다. 이후 비슷한 경향의 추상 작품이 1970년대를 지배하는 흐름이 됐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출현으로 도전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시장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②‘단색화(單色畵)’라는 이름

미술평론가 윤진섭씨가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단색화’전에서 영문으로 단색화(Dansaekwha)라고 고유명사화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국 미시건대의 한국계 교수 조안 키가 2013년 ‘동시대 한국미술 단색화와 방법적 시급함(Contemporary Korean Art: Dansaekwha and the Urgency of Method)’를 출간하며 국제적으로도 통용됐다. 이전까지는 ‘단색파’ ‘모노크롬’ ‘한국적 미니멀리즘’ 등 다양하게 불렸다.

③‘단색조(單色調)’라 쓰자고 주장하는 이유

회화 영역을 넘어서는 작품군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권영우는 한지에 구멍을 뚫거나 찢는 작업을 한다. 하종현은 마대천으로 짠 캔버스의 뒷면에서 표면을 향해 물감을 밀어올리는 식이다. 정창섭은 풀로 한지를 반죽한 뒤 화면에 붙인다. 캔버스나 한지라는 지지대에 의존하고 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회화라기보다는 평면성을 추구하는 조형작업이다.

④백색 미학을 탈피하자는데

‘단색조 작품’에는 백색만이 아닌 청색, 갈색, 회색 등 다양한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백색 미학은 백자의 아름다움을 비애의 미라고 설파했던 일제 강점기 야나기 무네요시에 대한 향수가 깔려 있다. 1975년 일본 전시와 관련해 일본인 비평가 오오시마 세이지는 “흰색을 기조로 하는, 어딘가 애절하고 쓸쓸한 면은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와 통하는 한국 전통의 미의식을 전승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⑤새로운 가치를 찾자면

서구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재료를 그대로 작품으로 사용하는 등 작가의 아우라를 거세하고자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단색조 작가들’은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찢는 등 작가의 신체적 행위, 작가의 주관을 강조한다. 반복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태극과 음양오행 등 성리학 이기론을 도입해 볼 수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