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무기 들고 요새 세운 이스라엘… 장벽 안의 적은 어떻게 할는지

입력 2015-12-11 19:11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병원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간호사가 팔레스타인인의 흉기 공격으로 부상한 이스라엘 남성을 치료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29일 예루살렘 옛 시가지에서 이스라엘 경찰을 공격하다가 사살된 팔레스타인인의 시신을 이스라엘 경찰이 수습하고 있는 모습. 지난 두 달여간 유혈사태로 최소 이스라엘인 19명, 팔레스타인인 109명이 각각 숨졌다. EPA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70년 가까이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진 지구촌 대표적인 분쟁지역이다.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된 지난달 중순 이 평화가 목마른 지역을 찾았다.

분쟁지역이라고 하지만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삶이 모두 분쟁으로 점철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적진(敵陣) 격인 이스라엘로 출근을 하고, 많은 이스라엘인에게 아랍인들은 이웃이거나 친구이기도 하다. 이들은 서로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면서도 또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분쟁은 엄존하는 현실이었다. 이스라엘 신문에는 팔레스타인인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동료가 울부짖는 장면이 나오고, 팔레스타인 방송에는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진 소년의 사진이 반복해서 나왔다. 도로 곳곳에는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총을 둘러메고 서 있었다.

차도 인근에 빽빽이 들어선 장벽을 보며 문득 ‘정치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시절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일이라고 배웠다. 아무리 분쟁 국가임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4%나 되는 막대한 돈을 무기와 장벽 건설 등에 사용한 것은 다소 과한 것이 아닐까. 같은 해 북한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의 국방예산은 GDP의 2.4% 규모였다. 이뿐인가. 이 나라 젊은이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후 짧게는 2년(여성), 길게는 3년(남성) 의무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혹자는 이런 요인들 때문에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으며, 분단국가인 우리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비용은 평화가 정착된다면 아낄 수 있는 사회적 비용들이다. 이런 비용 덕에 이스라엘은 ‘현대판 골리앗’에 비견될 정도의 무력을 갖췄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전히 테러 위협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한 지도자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1993년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등에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인정하고 이스라엘이 물러나기로 합의했던 이츠하크 라빈(1922∼1995) 전 총리 같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은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팔레스타인 자치구 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은 물론 곳곳에 팔레스타인인의 출입을 배제하는 장벽을 계속해서 짓고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장벽은 당장 폭탄을 들고 오는 테러범을 차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미 이스라엘 사회에 녹아들어 있는 아랍인들의 내부 테러까지 막지는 못한다. 공존이 아닌 배제의 한계다.

팔레스타인 측도 마찬가지다. 숱한 장정들이 차별과 억압을 무릅쓰고 새벽부터 이스라엘로 건너가 일하기 위해 검문소 앞에서 줄 서는 동안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지도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미 현지에서는 민생에 무관심한 채 기득권에 안주하는 파타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었다. 평화가 절실한 그곳에 제대로 된 정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2015년을 며칠 안 남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예루살렘=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