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Passion)’이란 어휘는 오늘날 열정이란 뜻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고통이나 고난의 의미로 널리 사용되기도 했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패션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란 뜻으로 사용됐다. 열정과 고난은 얼굴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몸을 가진 샴쌍둥이 같은 존재다. 어디든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인간 구원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열정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따랐듯이(롬 5:8) 고통이 없는 열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기훈 감독의 영화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신문사 연예부에서 일하게 된 수습기자의 열정과 고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만인이 소원하는 취업의 8부 능선을 넘은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 분)는 출근 첫 날부터 호된 신고식을 갖는다.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부장 하재관(정재영 분)으로부터 열심히 쓴 기사는 거듭 퇴짜를 맞고 현장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취재에 나서야 하는 눈물겨운 직장생활이 이어진다.
이 영화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신입사원 안드리아(앤 헤서웨이 분)처럼 깐깐한 직장 상사 밑에서 정신이 나갈 만큼 혹독한 고생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인생과 목표를 찾아가는 해피엔딩의 구조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상업적인 논리로 막장 기사를 주문받기도 하고 특종을 쫓아 허겁지겁 내달려야 하는 신문사 기자로서 애환과 연예기획사의 갑질에 대한 사회 고발적 성격까지 더해지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받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다. 열정만 있으면 취업전선이나 직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에 대한 냉소적인 선언으로 들린다. 미국의 인기 만화 작가인 스콧 애덤스의 자기계발서 ‘열정은 쓰레기다’에서 저자는 열정이 성공을 이끄는 게 아니라, 성공이 열정을 이끌기 때문에 성공하고 싶다면 열정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조언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정답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렸다. 사회적 성공이 삶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살아갈 때 열정은 고난을 감수할 만큼 값지다. 성경에서 가장 열정적인 삶을 산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던(빌 3:8) 것은 성공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님을 목적으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처음 가졌던 열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이 중요함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첫째, 상사의 재발견이다. 부하 직원에게 소리나 지르고 일만 시키는 줄 알았던 하 부장이 사실은 자신의 부서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감싸주는 책임감 있는 인물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사라졌던 열정의 불씨는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다.
둘째, 동역의 힘이다. 도라희는 일이 한창 힘들 때 함께 입사한 동료들과 마주앉아 애환을 나눈다.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일을 하는 가운데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음은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이다. 셋째, 남을 기쁘게 해주는 일로부터 오는 보람이다. 연예기획사 대표의 부정한 청탁을 뿌리치고 소속 배우의 누명을 벗겨주는데서 오는 정의감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 열정을 북돋운다. 열정적으로 살고 싶은 인생에는 고통이 따라 붙는다. 그래서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신 힘으로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빌4:13).
강진구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영화평론가)
[강진구의 영화산책] 열정과 고통 사이에서
입력 2015-12-11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