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크리스마스실의 추억

입력 2015-12-11 17:56

한 해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거리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인다. 울려 퍼지는 캐럴은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한다. “딸랑∼ 딸랑∼.” 정으로 가득 넘치는 빨간 냄비와 함께 구세군의 종소리가 정겹기 그지없다. 춥고 배고픈, 병들고 아픈 우리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연말이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에서 고사리손으로 국군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쓴 기억이 난다. 뻔한 내용으로 반의무적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크리스마스실(Seal)이다. 행여 떨어질까 침을 잔뜩 발라 우표와 나란히 붙였던 그때 모습이 오버랩된다.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는 몰랐다. 실이 결핵 퇴치 기금에 쓰인다는 사실을.

실은 111년 전 탄생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 아이날 홀벨의 아이디어였다. 우편물을 정리하다가 카드와 소포에 실을 붙여 보내면 그 돈으로 결핵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모습을 드러냈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결핵이 만연했던 터라 실은 세계 각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황해도 해주의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캐나다 선교의사 셔우드 홀에 의해 도입됐다. 최초의 실에는 남대문이 그려졌다.

대한결핵협회가 53년 창립된 뒤 본격적으로 국내에 보급됐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문화에 밀려 손편지가 쇠퇴하면서 실에 대한 관심도 급감했다. 2013년 39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는 34억1000만원으로 줄었다. 10년 전 64억원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든 액수다. 올해는 모금 초기여서 통계가 없지만 감소 추세가 이어질 게 분명하다.

한국은 아직도 ‘결핵 왕국’이다. 2014년 결핵 발생률을 보면 10만명당 86명으로 집계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으로서는 이만저만한 오명이 아닐 수 없다. 실 한 장 가격은 300원이라고 한다. 연말연시를 맞아 작지만 따듯한 정이 담겼던 ‘실의 추억’에 한번 빠져보면 어떨까.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