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일정한 소득 수준에 도달하면 개인 행복은 소득에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는다고 봤다. 지역정책에 있어서 양적 성장 못지않게 주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과 행복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2-5 클럽’(2만 달러 소득에 5000만 인구 이상)에 진입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국민의 행복지수는 꼴찌 수준이다. 정부의 지역희망 프로젝트(HOPE)는 탈꼴찌를 위한 처방이자 의지를 담고 있다. HOPE의 핵심은 ‘지역행복생활권’이다. 지역행복생활권은 의료, 복지, 일자리를 인접 지자체가 상호 협력해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현재 지자체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63개 권역이 설정돼 있다.
4년차를 맞은 지역행복생활권은 성과도 있지만 과제도 있다. 우선 재원 확보가 중요하다. 지역발전특별회계의 예산은 2010년 9조9000억원을 정점으로 계속 내리막길이다. 다행히 2016년도 주민행복생활권 사업 예산은 1조2000억원보다 늘어난 1조5000억원으로 증액됐다. 그러나 주민안전, 일자리 창출, 교육 및 의료 질 개선, 취약지역 생활환경 개선 등 주민 체감의 행복에 역점을 둔다면 보다 더 많은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예산의 공평한 배분도 중요하다. 재정력이 어려운 지역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226개 자치단체 중 69곳이 인구, 경제 측면에서 쇠퇴 현상을 겪고 있다. 지자체 간 체감 행복의 등가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들 쇠퇴 지역에 더 많은 재원을 쏟아 부어야 한다. 머리를 틀면 꼬리가 움직이듯 중앙정부에서 방침을 정하면 지자체에서도 지역 재생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로 화답할 것이다. 완도에서든 서울에서든 비슷한 행복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쇠퇴 지역에 대한 재정적 배려가 절실하다. 낙후지역에 대해 국고보조율을 높이는 일본의 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자체의 자구노력은 말할 나위도 없다. 어떤 사업이든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의존해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자체들은 국비 지원에 안주하지 말고 사업의 성과, 특히 주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질 제고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전시효과 사업보다 생활권 협력사업에 예산 배정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지역 간 칸막이를 허무는 작업도 필요하다. 님비 시설 공동 설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응급의료, 재난관리, 일자리 창출에서 실질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주민행복생활권의 근본 취지에 맞게 지자체 간 경계를 초월한 협업을 추진해 시설의 공동 이용, 재원의 공동 부담 등을 통해 한정된 재원으로 보다 나은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사업 특성에 맞는 평가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지역발전위원회는 생활기반 계정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자율적 사업 추진에 맞게 메타평가(meta-evaluation)를 실시하고 있다. 지자체의 자체 평가에 대한 적절성과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면 자체 평가의 적절성에 대한 지표는 소수이고 사업 성과를 다시 평가하는 지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평가로는 인력과 예산의 중복을 초래하고, 사업의 자율 추진이라는 생활기반 계정의 취지도 살리기 어렵다. 실질적 메타평가를 통해 자체 평가가 타당하게 이뤄졌는지, 주민 체감의 성과 시현에 기여했는지 점검해야 한다. 체감 성과의 9할은 내실 있는 평가에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혜수(한국지방행정硏 원장·경북대 교수)
[기고-하혜수] 지역행복생활권 체감하려면
입력 2015-12-11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