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세계 최대 출판사 엘스비어 회장 지영석] “한국 출판사, 치킨집 말고 스타벅스 꿈꿔라”

입력 2015-12-10 19:23 수정 2015-12-11 14:07
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인근 한 호텔에서 인터뷰에 응한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은 “올 들어 한국에서 강연 요청이 부쩍 늘었다”면서 “사람들은 제가 이뤄온 것들에 관심을 갖지만 저는 늘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서영희 기자

세계 최대의 출판사라는 엘스비어(Elsevier)를 이끄는 지영석(54) 회장을 지난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한국 출판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개최한 ‘테크플러스 2015’에서 강연한 직후 인터뷰에 응한 지 회장은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하라”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라” 등을 주문했다.

엘스비어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과학 논문의 25%가량을 출판하는 회사로 연매출이 3조원을 넘는다. 지 회장은 미국 국적 한국인으로 랜덤하우스 사장을 지냈고, 현재 국제출판협회(IPA) 회장이기도 하다.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솔루션을 제공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전제인가?

“디지털화가 안 돼 있으면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디지털화된 콘텐츠들을 합치고 분석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 만드는 게 솔루션이다.”

-디지털로 재가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우선 책을 다 뜯어야 한다. 챕터, 문장, 단어들을 다 뜯어서 전산화시키면 재구성의 기회가 생긴다. ‘김영삼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다고 치자. 내용을 전산화시킨 뒤 김영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기사나 책, 영상들을 다 합쳐보면 거기서 자주 하는 말, 독특했던 말, 흥미로운 말 등이 다 추출된다. 이게 재가공된 콘텐츠다. 김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재가공을 통해 김영삼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게 바로 출판사가 할 일이다.”

-재가공이 돈이 되나?

“물만 팔면 10원을 받지만, 병에 넣어 팔면 1000원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raw) 콘텐츠만 갖고는 점점 더 돈을 벌기 어렵다. 출판사도 신문사도 앞으로 로 콘텐츠의 가격은 확 떨어질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잃어버린 돈은 로 콘텐츠를 재가공해 다른 곳에서 팔아서 벌어 와야 한다. 전산화에서는 태깅(tagging·주제어 분류)이 중요한데, 태깅한 정보는 가격이 높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산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정말 많이 든다. 작은 회사들은 코스트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디지털시대에 몸집이 없으면서 영향력이 있는 사업은 없다. 카카오택시, 쿠팡,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을 보라. 다 몸집이 크다. 기술에 들어가는 기본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걸 감당 못 하면 디지털화를 할 수가 없다.”

-디지털시대에도 자본이 관건이라니.

“다행인 것은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자가 따라오게 돼 있다. 지금처럼 투자가 활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돈줄이 없어서 뭘 못 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겁이 많아서 못 하는 것이다.”

-한국 출판사들은 덩치가 작다.

“한국에서는 올해 매출 300억원을 넘는 단행본 출판사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출판이 이 정도라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뭐가 문제일까?

“한국에서는 책 몇 권 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걸로 한 5년 먹고 산다. 그건 치킨집이나 하는 짓이다. 스타벅스가 될 생각은 왜 안 하나? 출판사들이 돈을 벌면서도 투자를 안 하는 게 정말 이상하다. 출판에 성공하면 왜 빌딩을 사나? 나 같으면 회사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겠다.”

-출판사가 덩치를 키우려면?

“책을 알고 테크(기술)도 무서워하지 않는 전문 경영인이 맡아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코스트를 없애고, 합병하고, 몸집을 키우고, 유통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