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출판사라는 엘스비어(Elsevier)를 이끄는 지영석(54) 회장을 지난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나 한국 출판계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개최한 ‘테크플러스 2015’에서 강연한 직후 인터뷰에 응한 지 회장은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하라”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라” 등을 주문했다.
엘스비어는 세계에서 생산되는 의·과학 논문의 25%가량을 출판하는 회사로 연매출이 3조원을 넘는다. 지 회장은 미국 국적 한국인으로 랜덤하우스 사장을 지냈고, 현재 국제출판협회(IPA) 회장이기도 하다.
-“책의 콘텐츠를 재가공해서 솔루션을 제공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전제인가?
“디지털화가 안 돼 있으면 솔루션이 나올 수 없다. 디지털화된 콘텐츠들을 합치고 분석하고 관계를 맺어서 새로 만드는 게 솔루션이다.”
-디지털로 재가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우선 책을 다 뜯어야 한다. 챕터, 문장, 단어들을 다 뜯어서 전산화시키면 재구성의 기회가 생긴다. ‘김영삼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다고 치자. 내용을 전산화시킨 뒤 김영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쓴 기사나 책, 영상들을 다 합쳐보면 거기서 자주 하는 말, 독특했던 말, 흥미로운 말 등이 다 추출된다. 이게 재가공된 콘텐츠다. 김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재가공을 통해 김영삼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게 바로 출판사가 할 일이다.”
-재가공이 돈이 되나?
“물만 팔면 10원을 받지만, 병에 넣어 팔면 1000원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raw) 콘텐츠만 갖고는 점점 더 돈을 벌기 어렵다. 출판사도 신문사도 앞으로 로 콘텐츠의 가격은 확 떨어질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잃어버린 돈은 로 콘텐츠를 재가공해 다른 곳에서 팔아서 벌어 와야 한다. 전산화에서는 태깅(tagging·주제어 분류)이 중요한데, 태깅한 정보는 가격이 높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산화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정말 많이 든다. 작은 회사들은 코스트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디지털시대에 몸집이 없으면서 영향력이 있는 사업은 없다. 카카오택시, 쿠팡,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을 보라. 다 몸집이 크다. 기술에 들어가는 기본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까 그걸 감당 못 하면 디지털화를 할 수가 없다.”
-디지털시대에도 자본이 관건이라니.
“다행인 것은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만 좋으면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자가 따라오게 돼 있다. 지금처럼 투자가 활발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돈줄이 없어서 뭘 못 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아이디어가 없어서, 겁이 많아서 못 하는 것이다.”
-한국 출판사들은 덩치가 작다.
“한국에서는 올해 매출 300억원을 넘는 단행본 출판사가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출판이 이 정도라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뭐가 문제일까?
“한국에서는 책 몇 권 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걸로 한 5년 먹고 산다. 그건 치킨집이나 하는 짓이다. 스타벅스가 될 생각은 왜 안 하나? 출판사들이 돈을 벌면서도 투자를 안 하는 게 정말 이상하다. 출판에 성공하면 왜 빌딩을 사나? 나 같으면 회사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겠다.”
-출판사가 덩치를 키우려면?
“책을 알고 테크(기술)도 무서워하지 않는 전문 경영인이 맡아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코스트를 없애고, 합병하고, 몸집을 키우고, 유통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인터뷰-세계 최대 출판사 엘스비어 회장 지영석] “한국 출판사, 치킨집 말고 스타벅스 꿈꿔라”
입력 2015-12-10 19:23 수정 2015-12-11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