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韓電, 저유가 덕에 영업이익 사상 첫 10조원 돌파… 누진세 개선 없이 전기료 인하 시늉만

입력 2015-12-11 04:04

저유가에 힘입어 한국전력의 올해 영업이익이 사상 최초로 10조원이 넘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불합리한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선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려는 고민 없이 총선을 앞두고 요금 인하 시늉만 내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조환익 한전 사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한입으로 누진제 개선방안 마련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는 위증을 한 셈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영업이익에 남 몰래 웃는 한전=한전은 2013년 11월 전기요금을 5.4% 인상하는 등 2007년부터 6년간 44.6%나 요금을 올렸다. 이 영향으로 한전의 영업이익은 2013년부터 흑자로 전환됐고, 이후 저유가 영향으로 영업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한전 매출액은 2013년부터 매년 50조원대로 비슷했지만 영업이익은 1조5190억원에서 올해 8조6679억원(3분기 기준)으로 급증했다. 여기에 서울 삼성동 옛 한전 부지 매각 수익 9조원까지 합친 순익은 이미 10조원을 돌파했다. 한전의 영업 수완이 좋았다기보다 원가가 싸지면서 앉아서 돈을 번 셈이다. 실제 전기요금 원가보상율은 2014년 기준으로 주요 공공요금 중 유일하게 100%를 넘었다. 전기요금이 원유가격이 오를 땐 치솟다가 떨어질 땐 찔끔 떨어지는 휘발유 가격 구조처럼 변하면서 국민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었다.

◇총선 앞두고 방관하는 산업부=당정은 지난 8일 전통시장과 학교에 대한 전기요금 할인특례를 2년 추가 연장하는 등 ‘에너지 분야 민생안정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징벌적 제도로 전락한 전기요금 누진제의 근본적 개선방안은 담겨 있지 않았다. 전기요금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높은 요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절전과 저소득층 보호라는 목적으로 1974년 도입됐다. 그러나 2004년 개정 이후 10년이 넘도록 손보지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크다. 우선 누진율(최고·최저구간 요금차)은 11.7배로 일본(1.14배) 미국(1.1배)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다. 또 저소득층일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떨어지는 저가 가전제품을 많이 사용해 오히려 누진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저소득층 보호 취지도 퇴색했다. 전기가 부족했던 과거와 상황도 달라졌다. 산업부는 10일 올 겨울철 전력수급 전망에서 “피크 시기 최대 전력수요는 8100만㎾인 데 비해 공급능력과 예비력은 9321만㎾, 1221만㎾로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누진제 개선의 좋은 기회를 맞았지만 정부는 혹여 내년 총선에서 ‘부자감세’로 비쳐질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이창호 책임연구원은 “한국의 누진제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시대착오적 제도”라며 “안정적인 전력수요와 한전의 영업이익을 봤을 때 지금이 개선할 절호의 찬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김성열 전력진흥과장은 “전기요금 원가보상률은 기밀사항이며 누진제 관련은 ‘노코멘트’가 정부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