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뢰·배려 없이 돈에만 의존하려는 참담한 자화상

입력 2015-12-10 18:05
국민일보가 창간 27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신뢰가 사라진 공동체에는 ‘돈이면 모든 것이 된다’는 배금주의가 팽배했다.

국민일보가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3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19세 이상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낯선 사람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80.9%가 아니라고 대답했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힘이 돈이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76.8%가 ‘그렇다’고 답했다. ‘자신이 어려울 때 주변에 도와줄 이가 많으냐’에는 34.8%만이 ‘그렇다’고 밝혔고 응답자의 74.8%는 ‘노후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는 ‘금전’(40.2%)을 1위로 꼽았다. 이어 건강, 화목한 가정 순이었다.

예상했지만 씁쓸한 결과다. 사회 구성원간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관계의 단절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다수가 미래의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으며 오직 돈만이 삶의 수단이자 목표라는 사실이 설문 곳곳에서 확인됐다.

문제는 사회의 중추이자 미래를 책임진 30대가 어느 세대보다 각박한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신뢰’에 겨우 2.5%, ‘돈의 힘’에 대한 질문에 84.6%가 ‘그렇다’고 답한 것은 기성세대와 사회를 향한 극도의 불신과 좌절, 내일에의 기대포기를 드러낸 실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은 그 자체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경쟁을 촉진하고 또 다른 성과를 낳으면서 경제를 견인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나치게 성장 일변도에 치중하면서 시장경제를 넘어 돈의 가치가 삶의 전 부문을 지배하는 시장사회를 맞게 됐다. 모든 것을 돈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시장적 사고가 확산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양극화는 극심해졌고 이는 분열과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됐다. 이제는 성장 지상주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 경제는 대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포용적 성장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에도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 부활할 수 있도록 더 고민해야겠다.

신뢰의 실종은 공감 부재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은 인간 본성이다. 우리를 ‘호모 엠파티쿠스(공감의 인간)’라고도 하는 이유다.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고, 내가 낯선 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회를 작동하는 가장 큰 힘이다. 신뢰와 배려같은 덕목이 사라진 공동체는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는 역기능이 잇따른다. 누구에게 먼저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없다. 내가 먼저 믿음의 손길을 건네는 것만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