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유정회

입력 2015-12-10 17:58

1972년 ‘10월 유신’으로 박정희정권은 국회를 해산한다. 박정희는 그해 12월 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유신헌법을 공포하고 제4공화국을 출범시킨다. 장기 집권을 위한 유신헌법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신설,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의원 정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했다. 임기는 일반 국회의원 임기의 절반인 3년이었다.

유신헌법에 따른 제9대 국회의원 선거(중선거구제)는 다음해 2월 실시됐다. 의원 정수 219명 중 여당인 민주공화당 73명, 야당인 신민당 52명, 무소속 19명, 민주통일당 2명이 당선됐다. 3월 초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나머지 3분의 1인 73명의 전국구 의원을 뽑았다. 이들은 공화당과 별도로 독자적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데 그게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다. 입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대통령의 친위대였다. 79년 10월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국회의원직에서 제명한 것도 공화당 외에 유정회 의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 정치권에서 ‘유정회’가 회자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입법 지연을 이유로 국회를 공격하면서다. 박 대통령이 최근 한 달 동안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야당을 성토한 건 세 차례나 된다. ‘국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11월 10일), ‘립서비스만 하는 위선 국회’(24일),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12월 8일) 등 감정 섞인 표현을 사용하며 맹비난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를 유신시대의 유정회처럼 만들려는 시도” “국회가 청와대 출장소인가”라며 반발한 것이다.

아무리 ‘식물국회’가 문제라고 해도 삼권분립 체제에서 대통령이 입법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잘못이다. 국회는 유정회 같은 거수기가 아니다. 여야 간 의견 차가 있는 쟁점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상호 이견을 좁혀야 한다. 정 급하다면 대통령도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이 자극만 하니 10일 소집된 임시국회마저 오히려 꼬이는 것 아닌가.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