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낯선 이들의 집

입력 2015-12-10 18:06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고 있다.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낯선 사람으로 불쑥 들어서는 일은 쉽지 않다. 남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가 곧 나가야 하는 사람들과 세를 살 집을 둘러보러 온 사람은 서로 비슷한 처지다. 그렇다고 다시 볼 일 없을 사람에게 연대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속속들이 집을 보여주면서도 데면데면할 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그 집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고 하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집을 구경하다 보면, 그 광고가 의도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관심도 호감도 없던 사람들에 대해 굳이 궁금하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되고 만다. 생선 비린내가 진동하던 허름한 아파트가 기억난다. 집을 지키던 할머니는 거실에 펴 놓은 이불에서 막 일어난 눈치였다. 무심코 문을 열어 본 좁은 방바닥에는 ‘시계태엽오렌지’라는 책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나에게 그 책은 크고 작은 폭력에 관한 모든 이야기로 각인되어 있다.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던 산동네 연립주택 거실에서는 젊은 엄마가 갓난아기와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꼬마에게 점심을 먹이는 장면과 맞닥뜨렸다. 어려 보이기까지 했던 엄마는 낯선 사람이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말거나 오직 세 아이들 입에 밥이 들어가는지만 살폈다.

살아가는 일은 사물과 공간에 마모와 쇠락의 흔적을 남긴다. 낡은 벽지의 얼룩 같은 속사정들은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날마다 밥을 먹어야 하고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하고 지붕 밑에 잠자리를 펴야 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좀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설책을 읽거나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살아가고 있다. 크고 작은 집 안에서.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말은 ‘돌아갈 집이 없다’는 말인가 보다.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