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의 사진, 10개의 이야기] 그때 그 장면, 국민일보 27년 역사가 되다

입력 2015-12-10 00:08
백담사로 유배돼 칩거 중인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자를 업고 있는 모습을 잠입 취재해 카메라에 담았다(왼쪽 사진). 풍차 놀이기구를 타던 이지윤양이 장난을 치다 몸이 창틀 사이로 빠져나가 30m 고공에 매달린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이양은 다행히 머리가 창틈에 걸려 5분여 만에 구조되었다(오른쪽 사진).
임시국회에서 방송관련법 처리를 저지하던 평민당 조홍규 의원이 민자당 의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회의장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담아 관심을 모았다(위 왼쪽 사진). 국회예결위에서 정원식 국무총리(아래)의 답변 도중 야당 위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정 총리와 김용태 예결위원장이 똑같은 제스처로 "일단 들어보라"고 말하며 진정시키고 있다(위 오른쪽 사진). 민자당 거창지구당 개편대회가 열리고 있던 거창중학교 체육관 뒤편 구석진 자리에서 돈봉투가 오가는 모습이 포착됐다(아래 사진).
새해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12월 2일 밤 11시40분쯤, 국회예산안 강제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으로부터 회의 주재권을 넘겨받은 황낙주 부의장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격렬하게 저지하고 있다(왼쪽 사진).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 김대중 대통령이 탑승한 전용기의 앞문이 열리자 뜻밖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맞이했다. 55년의 대립과 반목이 한순간에 녹아내린 현장을 포착한 이 사진은 국내외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오른쪽 사진).
한반도의 허파인 백두대간이 파괴되면서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난개발로 신음 중인 강원도 강릉시 자병산의 모습(위 사진). 방화로 국보 1호 숭례문 누각이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아래 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2일 청와대를 방문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악수하고 있다. 이날 빌 게이츠는 대한민국 국가원수인 박 대통령과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악수하면서 결례라는 네티즌의 비난을 받았다.
내설악의 깊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초겨울 골바람에도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낮은 포복 자세로 800㎜ 초대형 렌즈를 가슴에 품고 흰 눈 덮인 7부 능선을 숨죽여 가며 오르내린 지 2시간.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의 눈을 피해 마침내 백담사가 눈 아래 보이는 나무 뒤편에 온전히 몸을 숨겼다. 또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기가 온몸을 엄습했다. 순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손자를 업고 마당으로 나왔다.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누르는 사진기자의 가슴이 뛰었다. 백담사에 ‘유배’ 중인 전 전 대통령 가족의 모습을 처음 카메라에 담은 순간이었다. 필름은 담뱃값 안쪽에 숨기고 개봉한 담뱃값 입구는 담배로 채웠다. 산을 내려오다 경호실 요원에게 붙잡혀 카메라 안에 들어 있는 필름을 빼앗겼다. 설악산 풍경만 몇 장 들어 있는 것이었다.

1988년 11월 27일, 군홧발로 국민을 짓밟은 정권의 비참한 말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 한 컷은 국내 언론뿐만 아니나 외신들도 앞 다퉈 보도했다. ‘민(民)을 거스르면 민(民)이 버린다’는 제목과 함께 선보인 특보는 200만부가 순식간에 바닥이 났다. 창간 이전의 특종인 이 사진은 제21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고 국민일보를 세상에 알렸다.

이후로도 국민일보는 특종 행진을 이어갔다. 부정한 돈 선거 유세현장에서 실제로 돈 봉투가 오가는 결정적 장면을 촬영해 해당 국회의원이 구속됐다. 새해 예산안 처리를 위해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도중 국회의장 입을 틀어막는 야당의원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포착해 한국보도사진전 대상 및 월드프레스포토 3위에 입상했다.

이외에도 불붙은 남대문 서까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담아 한국보도사진전 대상을 수상했고, 남북정상이 55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서 만나 악수하는 역사적 사진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역사의 현장에서 수많은 특종과 다양한 기획취재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렌즈를 통해 기록된 한 컷의 사진은 오늘도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