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이 10일 정오까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을 지금 은신 중인 조계사 밖으로 내보내 경찰에 넘기겠다는 의미다. 9일 불교계 반발을 무릅쓰고 조계사에 들이닥쳤던 경찰은 이 약속을 받자마자 작전을 연기했다. 양측이 서로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한 위원장 체포를 위한 ‘명분’을 주고받은 셈이다. 팽팽하게 맞물린 것처럼 전개된 이날 상황이 사전에 짜인 ‘각본’대로였다는 해석도 나온다.
13년 만의 종교시설 진입작전
경찰은 이날 ‘자진출두 시한’으로 정한 오후 4시가 되기 전부터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조계사 관음전 진입을 시도했다. 13년9개월 만에 종교시설에서 감행한 체포 작전이다. 2002년 3월 10일 조계사에 은신 중인 발전노조원들을 검거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처음이다. 이날도 과도한 공권력 행사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작전을 강행했다.
반발은 예상보다 격렬했다. 조계종은 오전에 입장문을 내고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단지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 개인을 강제 구인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 나아가 한국 불교를 또다시 공권력으로 짓밟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어 “경찰 병력이 조계사에 투입된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경고했다.
오후 2시 반쯤 처음 경찰 병력이 투입되자 조계종 종무원과 승려 등 100여명이 관음전 입구를 겹겹이 막아섰다. 기동대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인간띠’를 만들었다. 한 종무원은 “불교시설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경찰은 3시20분부터 관음전 진입을 시도했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조계사 직원 등 30명 정도가 스크럼을 짜서 저지했다. 약 7분간 관음전 문 앞 가로·세로 각각 5m 정도 공간에서 경찰과 민주노총 조합원, 취재진이 뒤엉켰다. 경찰은 4시쯤 2차 진입을 시도했다.
명분 주고받은 경찰·조계종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대치 상황이 한창이던 오후 5시쯤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내일 정오까지 한상균 위원장 거취 문제를 해결하겠다. 경찰과 민주노총은 모든 행동을 중단하고 종단의 노력을 지켜봐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동안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정부에 인내심을 주문하던 데서 입장을 바꿔 한 위원장을 내보내기로 결심한 셈이다. 종일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관음전 4층 한 위원장 방에는 오후 5시20분쯤 불이 켜졌다. 창문 안으로 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경찰청은 총무원장 입장 발표가 끝난 지 30여분 만에 입장 자료를 내 “기자회견 내용을 감안해 일단 집행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내일 정오까지 한상균의 자진 출석 또는 신병인도 조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당초 방침대로 엄정하게 영장을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이 한 위원장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의미다.
이날 경찰과 조계종은 명분을 주고받으며 한 위원장을 압박한 모양새였다. 경찰은 조계종이 한 위원장을 내보낼 명분을, 조계종은 경찰이 강제 집행을 중단할 명분을 준 셈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몸을 피신한 이후 상생과 원칙을 가지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 관음전 출입구까지 확보했던 경찰은 기존 경비 인력만 남기고 철수했다.
경찰은 애초 9일 한 위원장 검거를 마무리할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압박은 세게 하겠지만 (관음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종교시설 진입 작전은 정부에 대한 여론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만큼 경찰 단독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전날 조계종 내부 회의에서 화쟁위가 9일 오후 5시까지만 중재자 역할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돌았었다. 당시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자승 총무원장의 오후 5시 기자회견으로 한 위원장 문제는 자연히 화쟁위 손을 떠나게 됐다.
한상균 나올까
아직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조계종이 한 위원장을 어떻게 내보낼지가 관건이다. 조계종 측은 이날 벌어진 조계사 내 충돌 상황을 언급하며 스스로 나가주기를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이 체포되더라도 노동 관련법 개정 중단 등 그가 중재를 요청한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한 위원장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화쟁위는 이미 지난 8일 한 위원장에게 “거취를 조속히 결정해 줄 것을 희망한다”고 했지만 상황 변화는 없었다. 한 위원장이 버티면 조계종이 무력으로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공은 다시 경찰에 돌아간다. 경찰은 작전을 한 차례 연기한 만큼 더 이상 봐줄 명분이 없다. 민주노총은 이날 밤 9시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강창욱 심희정 신훈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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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09 21:30 수정 2015-12-10 0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