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걸렸다. 시인을 꿈꿨던 청춘은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성긴 50대가 되어서야 첫 시집을 들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84학번이니 시작(詩作)을 한지 30여년이 흐른 뒤다.
혁명과 울분, 술과 음악과 뒹굴던 1980년대의 대학시절, 밤새 끄적거렸던 시를 서랍 속에 잠재우기 일쑤였다. 내면의 감정을 담은 시를 외부에 발표한다는 게 멋쩍었다. 지독한 자기검열이다. 직장을 잡은 후로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빴다. 더구나 대기업 홍보실이라니.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친구와 의기투합해 음반기획제작사를 차렸다. 호기롭게 그 좋다던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시작한 일이지만 몇 년 못가 쫄딱 망했다.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으로 음악잡지에 글을 쓰며 지적 낭인으로 살다가 2001년 잡지사에 취직해 그나마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다. 그 무렵부터 시 동인 ‘리얼리스트 100’에서 활동했다. 2009년 리얼리스트 창간호에 발표한 이후 토해내듯 써온 시를 묶었다.
박시우(51·사진)의 첫 시집 ‘국수 삶는 저녁’에 수록된 시는 그래선지 시공간이 유년의 기억에서 현재까지 전 생에 걸쳐 있다. ‘비오는 날이면 (국수 가락처럼) 가늘어지는 아내’ 뿐 아니라 ‘팔남매 먹는 입이 커지자/ 높아가는 곤로 심지/ 말수 잃은 아버지’와 군대가기 전 잠시 오징어잡이배에서 풍랑을 만나 피항하며‘댓바람부터 술집에 모였던’ 경험까지 과거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시어를 길어 올린다.
밥벌이의 고달픔 탓이었을까. 삶의 풍경은 늘 먹는 것과 오버랩된다.
‘가늘어진 아내는 국수를 삶는다/ 빗줄기가 펄펄 끓는다/ 꽉 막힌 도로가 냄비 안에서 익어간다’(국수 삶는 저녁), ‘입술에 묻은 과즙을 핥는 불빛’(내리의 밤, 1984), ‘섬으로 모여든 해안길 우려낸 울퉁불퉁한 국물이 짜다’(장봉도에서) 등등.
4부로 구성된 시집의 2부는 클래식, 재즈 등 음악과 관련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랩소디 인 블루’ ‘푸가의 기법’이 자리 잡았다. 음악에 빠졌던 인생 편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서양 고전 음악에는 주제가 붙은 곡명이 많은데, 이걸 사용해서 시를 만들어보자고 20대부터 생각했다. 그게 하나 씩 하나 씩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삶에는 ‘자전거에 드뷔시 달빛만 싣고 온 남자’ 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질척했던 우리네 삶을 껴안는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은 에로틱한 시어조차도 생에 대한 에너지로 읽힌다. ‘힘줄 탱탱한 당간지주 희롱에/ 얼굴 붉히는 올벚나무/어쩔줄 몰라는 하는 봄.’ 삶은 고단해도 봄은 이렇듯 번식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유년의 기억에서 중년의 고단한 삶까지… 詩作 30년 만의 첫 시집
입력 2015-12-10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