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중독’이라니? 그런 중독도 있나? 아니 공부에 중독 되는 게 가능하기나 한가? 어쨌든 그렇다 치고, 그러면 그런 중독은 좋은 건가 나쁜 건가? ‘공부 중독’이란 제목은 확실히 눈길을 끈다. “삶이 공부에 사로잡혀 버렸다”는 진단도 허를 찌른다. 얇지만 예리한 책이다.
‘단속사회’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등 주목할만한 책들을 선보인 젊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의사이자 ‘심야 치유 식당’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등으로 유명한 작가 하지현의 대담을 묶은 ‘공부 중독’은 공부의 문제점을 논한다. 공부의 ‘악덕’을 말하는 책은 굉장히 드물지 않나 싶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엄기호와 병원에서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하지현은 요즘 아이들이 어딘가 아프다는 걸 알아챘고, 그 원인이 공부에 있다는데 공감했다. 둘은 지난 여름 이 문제를 놓고 네 차례 대담을 가졌다.
이들이 공부에 ‘중독’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지금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공부만’ 하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공부 말고도 해야 할 게 많지 않은가 하는 말씀? 그 정도가 아니다.
“공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게 있고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게 있는데, 살아가면서 터득해야 하는 영역들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니 진짜 삶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엄기호)
“앎의 영역이라고 해야 될 것들이 공부의 영역으로 식민지화되면서 그만큼 우리가 일상 속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익히지 못하는, 그런 능력이 사라져가는 현상이 분명히 발생하고 있죠.”(하지현)
공부의 ‘미덕’은 그동안 지겹도록 반복돼 왔다. 공부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공부만 매달리다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눈길을 주면서 공부를 만능키로 여기는 이들에게 경고를 보낸다.
하지현은 “우리 사회는 지금 ‘공부 중’이라는 푯말만 든 채 사회로 나가지 않고 그냥 머물러서 나이만 먹어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엄기호는 “요약정리 쫙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찾고 토론하고 이런 걸 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한다.
둘은 연애, 진로 등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공부에서만 찾고,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삶의 다음 단계로 진출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면서 ‘삶을 위한 공부’가 ‘삶을 잡아먹는 공부’가 돼버린 현실을 폭로한다.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공부를 하지만, 공부와 삶을 분리시킨 채 공부에 올인하다 보니 삶이 더욱더 빈약하고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빈약함과 허약함을 채우기 위해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또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만들면서 삶은 공부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어요.”(엄기호)
둘은 공부에만 매달리는 사람들, 삶과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공부로 가르치는 시스템, 모든 문제를 공부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공부를 더 하라는 압박이 상존하는 사회의 문제점을 다양한 지점에서 짚어낸다.
공부가 추구하는 표준화와 최적화의 논리는 효율만을 강조하고 혐오와 차별을 수긍하게 한다. 또 자기만의 생각을 만들고 색다른 생각을 추구할 여지를 없앤다. 그런 점에서 공부는 때론 퇴행이 된다.
공부로 배운 이상적인 기준이 삶의 평균적 기준이 되다 보니 현재의 삶은 늘 부족하다고 여겨지고 그럴수록 더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그런 불안을 타고 ‘공부 산업’은 호황을 누린다. 공부라는 담론이 직장과 사회에까지 침투해 모든 사람들을 학생 취급하는 것도 문제다. 사회성의 약화, 석사까지 하고 9급 공무원이 되는 ‘오버 퀄러파잉’ 문제, 공부에 대한 과도한 지출 등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현은 “공부라는 블랙홀이 학교를 넘어서 사회와 인생을 빨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부 중독’은 기본적으로 학력 중심 사회라는 견고한 구조의 문제다. 또 공부가 더 이상 성공이나 안정, 해결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이 트랙에서 먼저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공부 중독’이라는 시대의 질병을 발견한 두 저자는 “공동으로 대결하는 동시대인의 형성”을 요청한다. 그리고 “공부에 중독된 한국인이 그 독 때문에 내 인생뿐 아니라 자식의 인생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사회구조까지 동력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공부 중독] 시대적 질병 ‘공부 중독’ 탓… 청춘의 인생이 옹색하다
입력 2015-12-10 17:55 수정 2015-12-10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