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연극계 화제작 ‘시련’ 주연 지현준] “고뇌하는 인간, 정의 향한 선택 큰 울림”

입력 2015-12-09 18:32 수정 2015-12-10 17:15
연극 ‘시련’과 뮤지컬 ‘명동로망스’를 오가며 연말 무대를 달구고 있는 배우 지현준이 9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인근 명동성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충무아트홀 제공

연말 연극계 최고의 화제작은 지난 2일 개막해 28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시련’이다. 연극계의 고전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아서 밀러가 1953년 발표한 작품으로, 1692년 미국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을 소재로 당시 매카시즘 광풍에 사로잡힌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에서는 공연되지 못했다.

‘세일즈맨의 죽음’ 못지않은 걸작이지만 이 작품이 공연 전부터 매진을 기록하는 등 열풍을 일으킨 데는 청교도 체제에 반대하는 것이 악마와 동일시되는 극중 내용이 툭하면 ‘종북’ ‘좌빨’로 몰리는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마녀재판에 회부된 이후 거짓 고백으로 얻는 삶과 명예를 지키는 죽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평범한 농부 존 프락터를 연기하는 지현준(37)의 매력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현준은 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락터는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내는 역할이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고뇌하며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적으로 신앙을 가진 지 얼마 안돼 영화 ‘크루서블(시련)’을 보면서 배우로서 목표가 좀 더 분명해졌던 경험이 있다”면서 “40대는 넘어야 이 역할을 맡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를 잡게 돼 기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상황과 관련해 이번 작품의 의미를 묻자 “프락터의 대사 가운데 ‘씨앗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이 있다. 프락터가 자신의 내적 갈등 끝에 정의를 택했는데, 우리 자신 모두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03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며 배우생활을 시작한 그는 뮤지컬 ‘모비딕’으로 2012년 더뮤지컬어워즈 신인상,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로 2013년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후 연극 ‘길 떠나는 가족’ ‘에쿠우스’ ‘단테의 신곡’ 등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인물을 소화하며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련’ 외에 1950년대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린 뮤지컬 ‘명동로망스’(10월 20일∼내년 1월 3일 서울 충무아트홀)에 이중섭 역으로 출연 중이다.

그는 “‘명동로망스’에 겹치기 출연하게 된 것은 친분이 두터운 김민정 연출가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지난해 ‘길 떠나는 가족’에서 연기했던 이중섭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이 커서 욕심을 냈다”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노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지만 앞으로 뮤지컬에도 꾸준히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을 직접 켜며 노래한 ‘모비딕’의 주인공 퀴케그역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뮤지컬 ‘베르테르’의 중요 배역인 카인즈로 나섰다가 가창력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는 “연기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욕먹은 것은 처음이었다. 꾸준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서인지 그 이후에 욕을 먹진 않고 있다”며 웃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