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 가능 ‘웰다잉’ 첫발… ‘호스피스·연명의료’ 법안 국회 보건복지위 통과

입력 2015-12-09 21:40
죽음을 앞둔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존중하는 법이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돼 시행되면 한국인 삶의 마지막 시기 모습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을 의결했다.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문화의 기반을 마련한 첫 독자적 법률이다.

이 법은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평소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 놓거나 병원에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쓴 사람은 임종시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이런 서류를 작성하지 않았어도 평소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가족에게 표시했다면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 단 가족 2명 이상의 진술이 일치해야 한다. 가족 중 누군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가족이 1명이면 그 1명의 의견이 존중된다.

환자가 의사표현 능력이 없을 때도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 미성년자인 환자는 친권자인 법정대리인이 이를 결정할 수 있다.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경우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가족이 없는 환자의 경우 병원 윤리위원회가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연명의료 결정은 죽음이 수일∼수주로 임박한 환자에게만 적용된다. 환자가 임종시기에 있는지는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판단한다.

개인이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국가에 등록돼 데이터베이스(DB)화된다. DB를 관리하고 의료기관 요청 시 확인해주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보건복지부 산하에 생기게 된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이 암 환자에서 말기 환자로 확대된 것도 작지 않은 의미다. 앞으로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과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질환 등을 앓는 말기환자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다. 복지부는 추가로 관련 질환을 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찾는 사람이 지금보다 약 10%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호스피스 병상 부족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병상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과 임종시기 판단, 호스피스 신청을 위한 의사소견서 발급, 호스피스 이용 등에 따른 비용은 모두 건강보험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암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지난 7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

연명의료에 관한 조항은 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뒤 2년 후 시행에 들어간다. 19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이날 막을 내려 임시국회가 열려야 법을 의결할 수 있다. 여야가 19대 국회 남은 기간에 임시국회 개최 여부를 놓고 대치하고 있어 최종 통과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