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가 창간 27주년을 맞았다. 돌이켜보면 국민일보의 탄생 배경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과 무관하지 않다. 1987년 6월 민주화 열기의 경험과 더불어 당시 한국사회는 새로운 변혁의 기운이 들불처럼 번져갔으며 이는 신문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한국 교계는 기독교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신문의 탄생을 고대했었다. 이러한 기대들이 88년 국민일보 탄생으로 표출됐던 것이다.
모든 신생 매체가 그렇듯 출발은 미약했으나 국민일보는 지난 27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왔다. 우리 사회의 변화 욕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사랑과 화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해내려는 국민일보의 노력은 이제 독수리 날개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 모두가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과 하나님의 함께하심 덕분이라고 우리는 감히 고백한다. 창간기념일을 빌려 임직원 모두가 마음을 모아 독자들과 하나님께 거듭 감사드린다.
9일 열린 창간기념 감사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설립자 조용기 국민일보 명예회장은 국민일보의 사명을 거듭 촉구했다. “신문은 인간의 생각을 이끌어갈 촉매제가 돼야 하며 국민일보는 그 생각의 초점에 기독교적 가치로서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예수가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장, 18∼19절)”고 당신의 등장 이유를 선포한 사명감을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였다.
국민일보의 존재 의미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며 각 분야에서 독자들과 함께 그 뜻을 전파하고 공유하면서 지속적으로 생각을 환기시키는 데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다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사회의 인구동학적인 압박까지 겹쳐지는 상황에서 생각의 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지금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인류사적 차원에서 개혁과 갱신의 문제를 다시 짚어봐야 할 때다. 1517년 종교개혁은 흔히 가톨릭에 대한 비판과 혁신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움직임만으로 보기 쉽지만 그 배경에는 인류에 대한 인문학적인 쇄신이 선행돼 있다. 경제사적으로도 중상주의의 기운이 충만한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교리적인 차원을 벗어나 개혁과 갱신 일반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따져 묻는 계기가 돼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일보는 꼭 맡아야 할 역할을 찾아 감당할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현 상황은 87년 6월항쟁 30주년을 앞둔 시점이다. 한국은 피식민지 국가에서 독립한 나라 중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달성한 국가로서 수많은 개도국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내부의 실상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국가, 정부, 고위 공직자 등 이른바 큰 권력과 관련된 부문에서는 절차적으로나마 분명 민주화를 쟁취했지만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지역단체, 아파트 조합 등에서는 여전히 작은 권력이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화의 사각지대가 엄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그저 과거 큰 권력과 대항했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주민자치는 뒷전이고 생활민주주의는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좌절된 채 특정 작은 권력들에 의해 사실상 짓밟히고 있다. 작은 권력을 향한 민주화 요구가 시작돼야 한다. 삶의 터전 위에서도 민주주의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변혁이 요청된다. 참여와 협력을 전제로 시민사회의 소리가 제대로 뿌리내릴 때 우리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
경제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압축성장의 경험은 과거 기억엔 분명 있지만 성장률 전망이 이미 세계 평균 수준 이하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는 대단히 불안해졌다. 과거에는 수출·대기업 대 내수·중소기업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도 성장 규모가 어느 정도 유지된 덕분에 수출·대기업의 낙수효과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운 성장동력 모색이 어렵다면 적어도 기존의 내수·중소기업의 활력 증진 방안이라도 최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해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 남북관계 또한 답답한 상황이다. 8·25합의에 따라 어렵게 마련된 차관급 대화가 11일로 다가왔지만 항례에 따라 언제 어떤 계기로 다시 물거품이 될지 알 수 없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하면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풀어내겠다는 것은 멋모르는 낙관주의에 불과하다. 5·24조치의 전향적인 해결을 통해 남북관계 관리 능력부터 키워야겠다.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상당한 임계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변화의 기운이 충만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국민일보가 다시금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신문으로 거듭나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창간기념일을 맞아 하나님 앞에서 독자와 더불어 거듭 곱씹어보는 주제다.
[사설] 다시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신문으로- 창간 27주년에 부쳐 -
입력 2015-12-09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