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초 한국이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국에 선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제네바에서 들려왔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인권 관련 최고기관의 의장을 맡게 된 것은 정부 수립 이래 최초이다. 다자외교에서 국제기구 또는 회의 의장직을 수임하는 것은 치열한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괄목하게 신장되고 있는 우리의 위상과 외교력을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한국은 바야흐로 다자외교의 전성기로 진입하고 있다.
우선 핵안보·핵비확산 분야에서 우리는 2016년 IAEA 핵안보 각료급회의 의장직을 외교장관이 수임하게 돼 있고, 내년부터 2년간 핵·미사일 분야의 수출통제 체제인 원자력공급국그룹(NSG) 및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의 의장국으로 활동한다. 2012년 출범한 핵안보 정상회의 프로세스가 내년 말 IAEA 핵안보 각료급회의 체제로 전환되는데,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북핵 문제가 국제 비확산 체제의 가장 큰 도전으로 남은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발 등 경제사회 분야에서 한국은 지난 7월부터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의장국을 수임 중인데, ECOSOC는 지난 9월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 이행을 위한 핵심기구이다. 한국은 지난 5월 인천 세계교육포럼 개최 등을 통해 ‘교육을 통한 개발’의 대표적 성공모델로 인식되고 있으며, 지난해 에볼라 긴급구호대 파견과 올해 메르스 극복, 지난 9월 글로벌 보건안보구상(GHSA) 고위급회의 주최를 통해 보건안보 분야에서의 주도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의 유네스코 가입 이후 65년 만에 유네스코를 방문해 특별연설을 했는데, 한국은 문화 분야에 있어서도 유네스코 3대 이사회로 불리는 집행이사회, 세계유산위원회, 무형유산보호위원회의 이사국으로 활동 중이다. 이는 유네스코 회원국 중 유일한 사례다.
2006년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된 데 이어 올해 한국인의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의장 선출은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박근혜정부 다자외교가 이룬 쾌거다. 어젠다 설정 및 소집력 측면에서 국제기구 수장이나 회의 의장이 갖는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의 다자외교는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6년 안보리 이사국 진출, 2001년 유엔총회 의장 수임, 2006년 유엔 사무총장 당선 등 꾸준히 성과를 도출해 왔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래 글로벌 외교를 적극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13∼14년 안보리 이사국 수임, 2013년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의장, 지난해 ITU 전권회의와 올해 세계물포럼, 세계교육포럼, 개발협력포럼 주최 등 주요 국제회의 유치 및 의장국 활동 등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다자외교를 펴고 있다.
다자외교는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외교에서도 가장 어려운 테크닉을 요한다. 왜냐하면 특정 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 보편적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 적극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한국에 대한 신뢰는 향후 통일과정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국력 상승에 비례하여 우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와 요구도 계속 커질 것이다. 그런 만큼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한반도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대되어야 한다. 점점 복잡해지는 국제환경 속에서 우리는 글로벌 무대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다자외교 역량과 인프라를 꾸준히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특별기고-윤병세] 한국, 다자외교 전성기 진입
입력 2015-12-09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