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행(57)씨는 오른쪽 다리를 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버지의 키는 160㎝ 정도로 작았다. 집은 끼니를 때우기 어려울 만큼 가난했다. 어머니는 농사일을 하며 4남1녀를 키웠다. 아버지는 다리가 아파 일을 돕지 못했다. 마을 어귀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술이나 한잔 하지” 부르는 동네 어른들과 불콰하게 취하곤 했다.
아버지가 다정한 편은 아니었다. 다친 다리를 한탄하며 가족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하지만 취해 들어오면 “그래도 내가 6·25전쟁에 참전했다”며 옛날 얘기를 하곤 했다.
이름 ‘祐’자를 잘못 기재한 軍
1929년생 아버지는 두 살 연하 어머니를 만나 1950년 결혼했다. 신혼의 단꿈에 젖은 지 얼마 안돼 6·25전쟁이 터졌다. 그해 12월 입대했다. 전쟁 중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포탄 파편에 오른쪽 허벅지를 크게 다쳤고, 1951년 8월 전역했다. ‘복무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군에선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경기도의 집에 돌아와서도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아버지의 상처는 점점 악화돼 지팡이를 짚고야 겨우 걸었다. 앉아 있는 것도 고통스러워했다. 셋째 아들인 성행씨는 아버지가 밤마다 끙끙 앓던 게 기억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고통을 참으려 자주 술을 마시다 건강을 잃었다. 1977년 46세로 세상을 떠났다. 한참을 앓았지만 병원에 가지 못해 정확한 병명도 알지 못했다. 성행씨는 “없는 살림에 아버지 몸에 좋은 것 해드린다며 어머니가 보신탕 끓이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성행씨는 참전용사였던 아버지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위해 1980년 처음 병무청을 찾았다. 아버지 이름 ‘조병우(趙炳祐)’를 댔더니 “그런 사람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에도 아내, 남동생 등과 대여섯 차례 더 병무청·국방부 등에 가봤지만 끝내 기록을 찾지 못했다. ‘전쟁 통에 서류가 없어졌나 보다’고만 생각했다.
성행씨가 가족을 부양하는 사이 빠르게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잊지 않았다. 2013년 10월 다시 병무청을 찾았다. 이번엔 아버지가 살던 지역의 참전용사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딱 한 명이 있다고 했다.
‘개인정보라 찾아 줄 수 없다’는 직원을 설득해 겨우 병적기록부를 확인했다. 아버지 이름 한자가 선명했다. 하지만 한글로는 ‘조병석’이라는 틀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기록 관리자가 ‘祐(우)’자를 ‘석’으로 잘못 적은 바람에 수십년 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거였다. 하필 ‘祐’자의 ‘示(보일 시)’변 위로 직인이 찍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성행씨는 “기뻐서 병무청을 나와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전역한 지 62년 만이었다.
“국가는 유공자 예우 의무 있다”
참전 사실이 확인됐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기록을 잘못 관리한 정부에선 별도의 보상도 사과도 없었다. 성행씨는 서울북부보훈청에 국가유공자등록을 신청했다. 보훈청은 지난해 5월 아버지를 국가유공자로 판정했지만 최하 등급인 7급으로 분류했다. 제대 직전 군 기록만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성행씨는 서울행정법원에 ‘7급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사진·의료기록 등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당시 군 기록에도 구체적 부상 정도나 치료 경과는 없었다. 성행씨는 “의료보험도 없었고 산골이라 병원도 없었는데 어떻게 기록을 남겼겠느냐”고 말했다.
성행씨는 결국 지난 5월 어머니 박성순씨 이름으로 법원에 국가배상 소송을 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8단독 김형원 판사는 “국가가 이름을 잘못 관리해 원고가 유공자 예우 및 경제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위자료 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김 판사는 “국가는 6·25전쟁 중 사망한 국군의 유해를 찾아야 하듯 생명과 신체를 바친 국가유공자를 예우할 의무가 있다.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행씨는 “정부 측 대리인이 재판에서 손해배상 유효기간이 지나 배상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가슴이 찢어졌다”며 “소송은 이겼지만 가족에게 지나가버린 시간이 한스럽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단독] 이름 잘못 기재… 6·25 참전 아버지, 62년 만에 명예회복
입력 2015-12-09 04:00 수정 2015-12-09 1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