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低유가의 저주

입력 2015-12-08 21:23
국제유가 급락이 산유국이라는 연계 고리를 통해 세계 경제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 불안과 디플레이션(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심리 강화라는 저유가의 부정적 효과가 구매력 강화와 비용 감소 등 긍정적 효과를 압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유가 하락이 축복이 아니라 세계 경제에 저주가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7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016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2.32달러(5.8%) 떨어진 배럴당 37.65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09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런던 ICE 선물시장의 1월 인도분 브렌트유도 2.29달러(5.3%) 내린 배럴당 40.71달러를 기록했다.

유가 폭락의 단초는 4일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감산 합의가 무산된 것이다. 하지만 근본 이유는 공급 과잉 지속으로 저유가가 내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때문이다. 내년부터 서방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는 이란이 증산 의사를 분명히 했고,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도 서방 제재로 인한 경제난으로 증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일부 경제예측기관은 앞으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선진국들의 석유비축량은 한 달치 사용분인 30억 배럴에 달한다.

문제는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산유국 재정 악화의 파장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산유국의 부도 위험과 금융위기 전염 가능성을 높이는 한편 이미 약화된 글로벌 수요 부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유가 급락 여파로 이날 러시아 루블화를 비롯해 캐나다 달러, 콜롬비아 페소, 노르웨이 크로네 등 석유 생산국의 통화가 급락했다. 캐나다 달러는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러시아 등의 국가 부도 위험도 커지고 있다.

저유가는 실질가계소득을 개선시키고 소비를 증대시키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최근엔 물가를 낮춰 전 세계에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두드러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유가 하락은 석유 생산 과잉보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감소에 기인한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면서 “세계 경제 침체기의 유가 하락은 예상보다 글로벌 경기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