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학 실험실에서 지난 10월 19일부터 발생한 집단폐렴의 원인이 ‘방선균’(사진)으로 추정됐다. 흙과 식물 등에서 발견되는 세균의 일종으로 과민성 폐장염을 일으키는 대표적 병원체다.
집단감염은 동물사료 실험을 하는 공간에서 연구원들이 먹고 자고 공부하는 등 실험실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또 대학 측이 환기시스템 가동을 중단해 병원체가 건물 전체로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운 방선균=질병관리본부는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건국대 감염 환자 2명의 가래와 다른 2명의 조직, 1명의 기관지 세척액에서 방선균으로 추정되는 미생물을 관찰했고 실험실 환경 검체에서도 동일한 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방선균은 흙이나 사료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농부에게 폐증을 일으키는 주요 병원체다. 곰팡이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섭씨 50∼60도에서 잘 자란다. 방선균에 의한 집단폐렴이 국내에서 발견된 적은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천병철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농사를 짓거나 사료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면 접촉하기 어려운 균”이라고 설명했다.
보건 당국은 방선균을 집단폐렴의 확실한 원인으로 결론짓진 않았다. 방선균은 면역과민반응을 일으킨다고 보고돼 있는데 이번엔 염증을 일으켰다. 방선균과 다양한 미생물이 복합적으로 병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동물 실험으로 확실한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방선균과 실험실 곰팡이를 각각 실험용 쥐의 기도에 투여하고 3개월간 변화를 관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동 중단된 환기구로 확산=건국대 실험실에선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보건 당국 관계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과 실험실 공간은 칸막이 등으로 분리해야 하는데 실험실 안에 공부방 시설이 있어서 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잤다”고 했다. 실험을 마친 미생물이 책상 서랍 등에 방치된 흔적도 발견됐다.
특히 환기시스템 가동 중단이 집단발병을 부추겼다. 외부 공기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생긴 음압이 병원체를 환기구가 연결된 각 방으로 나르는 역할을 했다. 당국은 가스 실험을 통해 503호 실험실에서 4·5·6·7층 실험실로 오염원이 확산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양 본부장은 “해당 건물은 지열로 공기를 데워 겨울철에 공급하도록 설계됐으나 지열 이용에 한계가 있어 2013년부터 환기시스템 작동이 중단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동물생명과학대 건물은 내년 3월에나 다시 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 당국은 건물 내 오염원을 제거하고 효율적 공기 가열 설비를 마련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재사용을 허용할 방침이다.
건국대에서 발생한 폐렴환자 55명은 증상이 호전돼 퇴원했다. 당국은 “비슷한 실험실 환경이면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와 협력해 대학 실험실 안전환경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건국대 집단폐렴 원인은 ‘방선균’ 추정
입력 2015-12-08 20:03 수정 2015-12-08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