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더 있겠다”… 약속 깬 한상균, 난처한 조계사

입력 2015-12-07 21:55 수정 2015-12-08 00:04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7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한상균 위원장의 기자회견문을 대신 읽고 있다. 구성찬 기자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은신 22일째인 7일 계속 사찰에 남아 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조계사 신도회에 “2차 민중총궐기 집회가 끝나는 6일까지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를 ‘집회 후 퇴거’로 받아들였던 조계사 측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허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위원장은 자신의 자진 출두와 정부의 노동개혁 중단을 맞바꿔보려는 듯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이 노동개혁에 ‘올인’한 터라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경찰은 한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나섰다.

한상균의 ‘베팅’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오전 11시30분 한 위원장이 머무는 서울 종로구 조계사 관음전 주변에서 한 위원장의 기자회견문을 대신 발표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기자회견문에서 “지금 당장 나가지 못하는 입장과 처지를 헤아려 달라”며 “노동개악 처리를 둘러싼 국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조계사에 신변을 더 의탁할 수밖에 없다. 그리 긴 시간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노동개악이 중단될 경우 화쟁위 도법 스님과 함께 출두할 것이며, 절대 다른 곳으로 피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에도 “정부가 노동개악 강행을 중단하면 자진 출두하겠다”며 ‘조건부 출두’ 의사를 밝혔었다.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그의 출두 보류는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한 위원장이 노동개혁 중단을 조건으로 내거는 한 자진 출두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두 가지를 교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에 노동개혁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주문했다.

평화집회 퇴색 자충수?

한 위원장의 계속되는 은신은 여론 악화로 이어져 민주노총 등 진보 진영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검·경의 강경 대응에 빌미를 주는 상황이다. 노동개혁 문제를 이슈화하는 효과도 찾아보기 어렵다.

자진 출두를 거부하고 조계사 체류를 고수하면서 어렵게 성사된 평화 집회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자회견 도중 한 조계사 신도는 “그래서 안 나가겠다는 거야? 약속을 지켜야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의 결정은 조계사나 신도회와 합의되지 않은 채 발표됐다. 조계사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약속을 저버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허탈하고 허망해서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는 한 위원장이 아직 ‘자진출두’ 의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화쟁위 정웅기 대변인은 “국민의 법 감정을 반영해 자진 출두 입장을 밝힌 것은 환영한다. 조건을 만들기 위해 화쟁위도 노력하려 한다”고 했다.

숨통 조이기 돌입한 경찰

경찰은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조계사에 진입할 수 있는 모든 출입구를 막고, 출입증을 착용한 조계사 스님과 종무원을 제외한 남자 신도의 출입을 제한했다. 경찰은 1차 민중총궐기 때 한 위원장의 도피를 도운 노조원 1명을 추가로 구속했다. 시위와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총 9명이 됐다.

경찰은 한 위원장 검거를 위해 조계사 진입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조계사에 진입하는 상황도 배제키 어렵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당장 체포영장 집행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면서도 “가장 높은 단계도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장 높은 단계’는 강제 집행을 의미한다.

강 청장은 다만 현 시점에서 영장 집행 방안이 거론되는 것을 꺼렸다. 그는 “갑자기 돌발적이고 급박하게 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조계사 측에) 공식적으로 영장 집행을 요청한다든지 (한 위원장 측과) 물밑 접촉을 한다든지 여러 방안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 위원장은 국회에서 노동개혁 법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16일 총파업을 지휘하겠다고 말했다.

심희정 강창욱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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