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파 정권 몰락] 차베스·룰라, 그 이후가 없다

입력 2015-12-07 21:27 수정 2015-12-08 00:02

우고 차베스(2013년 사망)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일국의 지도자 이상의 파급력으로 밀레니엄을 전후한 남미 대륙의 정치지형도를 바꿨다. 강력한 빈민구제 정책을 통해 미국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저항, 남미의 ‘좌파 물결’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남미 좌파 10년’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좌초 위기에 처한 현재 남미 정계에는 차베스와 룰라를 잇는 아이콘(상징적 존재)이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도약하던 남미는 ‘리더의 부재’와 함께 좌우로 일렁이며 가라앉고 있다.

6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권 여당이 모든 선거를 이길 순 없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차베스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지목됐던 마두로 대통령과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패배는 남미 좌파 진원지에서 그 몰락의 실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차베스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이용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과감한 빈민구제책으로 대중의 마음을 샀다. 주변 중남미 국가들의 ‘좌향좌’를 지원하면서 남미 좌파의 ‘큰형’ 역할도 자임했다. 하지만 저유가 행진과 글로벌 경제위기 등 대외 악재에 직면한 후임 마두로 대통령은 효과적인 정책 선회보다는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포퓰리즘 연장을 택했다. 그 결과 극도의 인플레이션과 경제 왜곡을 가중시키며 포퓰리즘 본연의 효과도 누리지 못한 채 대중 저항에 직면했다. “본인을 차비스타(Chavista·차베스를 추종하는 세력)라 생각하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싫다”는 응답이 절반에 달했던 총선 전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남미 최대(最大)국 브라질의 좌파정부도 위기는 마찬가지다. 룰라의 후광을 등에 업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재선에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반등 없는 경제위기가 지속되며 탄핵에 직면한 상황이다. ‘양극화 완화와 경제 실용주의 강화’라는 당면 과제는 명확하지만 호세프 리더십은 뚜렷한 돌파구를 열지 못한 채 지지율 하락만 수수방관하고 있다.

“부자에게 돈 쓰는 건 투자라고 말하면서 왜 빈민에게 쓰는 돈은 비용이라고 하는가?” 반문했던 룰라는 빈민 지원을 ‘투자’의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때문에 무분별한 재원 남용으로 포퓰리즘의 한계에 봉착한 베네수엘라와는 달리 브라질의 현 위기가 ‘룰라이즘’(실용을 우선으로 한 대중주의)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호세프 대통령의 연이은 실정과 스캔들에 지친 브라질 대중들은 룰라를 재소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후보가 승리를 거두는 등 중남미 전역에서 중도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진 반면 남미 좌파의 ‘다음 세대’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재집권에 성공한 중도좌파 타바레 바르케스 우루과이 대통령과 지난 8월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대권 재도전을 시사한 룰라 등 역전의 용사들이 속속 귀환하는 현상은 ‘포스트 차베스’ ‘포스트 룰라’를 발굴하지 못한 남미 좌파의 우울한 자화상을 대변한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