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 스탠퍼드대 리카싱센터에 젊은 한인 과학자 130여명이 모였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IBS)이 뇌·신경과학 분야의 우수한 해외 한인 과학자를 유치하러 간 자리였다. IBS는 이날부터 샌프란시스코 인근 4개 대학(스탠퍼드대·UC버클리·UC데이비스·UC샌프란시스코)을 돌며 유능한 박사급 한인 인재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첫날부터 ‘쓴소리’가 쏟아졌다.
재미 과학자들은 “5년, 10년 뒤에도 연구할 수 있다는 안정감과 ‘내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다면 한국행을 택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한국의 척박한 연구 환경에 대한 우려와 문제점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UC버클리 박사과정인 김준연(24)씨는 “한국은 승자독식 사회로 한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곳은 실패해도 길이 있고,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분위기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주어진다는 얘기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연구과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다음 과제 연구비를 받기 어렵고, 이 때문에 창의적 연구보다 ‘성공 가능한 연구’에만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의 자율과 독립성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스탠퍼드 의대 박사후연구원 이혜련(37·여)씨는 “미국은 전반적으로 포스닥(박사후과정)에 자율성을 주는 경향이 있다. 기업이건 대학이건 박사급 연구자라면 지위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고 했다.
일본의 ‘장인 정신’을 우리 과학계에 퍼트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스닥)으로 신경과학을 공부 중인 이성진(39)씨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성과 위주 연구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수 인재 유치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두뇌유출지수는 3.98이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수치로 조사 대상 61개국 가운데 44위였다. 0부터 10까지인 이 지수가 낮을수록 고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두뇌가 많음을 뜻한다.
두뇌유출이 가장 적은 나라는 노르웨이(8.27)였고, 스위스(7.56) 핀란드(6.83) 미국(6.82) 등이 뒤를 이었다.
두뇌유출은 ‘사람’의 힘으로 성장을 일군 우리 경제에 치명적이다. 우리 연구소와 대학, 기업은 해외의 우수 두뇌에 수없이 ‘러브콜’을 보내지만 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반면 해외의 한인 과학자들은 한국에 ‘자리’가 없다고 토로한다. 국내 산업계와 해외 인재풀 사이에도 ‘미스매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진씨는 “한국에서는 해외로 나간 인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실적 부분을 생각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생명과학 한인 연구자들 사이에선 ‘포스닥으로 세계일주’라는 자조 섞인 말이 돌 정도로 박사급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는 경우가 많아 돌아갈지 말지 고민”이라고 했다.
민태원 기자, 샌프란시스코=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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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인 우수두뇌 유치하러 미국 갔더니… “연구할 자리도, 분위기도 안되면서” 쓴소리
입력 2015-12-08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