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탕주의’에 빠진 한국, 한국인

입력 2015-12-07 21:57
오승환(33·사진)은 올해 일본 프로야구리그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받는 외국인 투수였다. 한신타이거즈가 그에게 지급한 연봉은 3억엔(약 28억원)이다.

그런 오승환은 마카오에서 수억원대 해외 원정도박을 했다는 정킷방 운영업자의 진술에 따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을 앞둔 상태다. 앞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삼성라이온즈 야구단에서 방출된 임창용(39)처럼 오승환도 “게임을 벌이긴 했지만 금액은 수천만원대”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7일 전해졌다.

◇도박중독 대한민국=저명인사들의 상습도박은 올해 들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의 수사에서 끊임없이 드러났다. 성공신화로 존경받던 기업인들에 이어 최근에는 유명 스포츠 선수들까지 연루되는 모양새다. 일부에선 스포츠 선수들의 도벽을 승리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왜곡된 동료의식 등으로 설명한다. 학원스포츠 단계에서부터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도박중독을 특정 직업군에만 잠재된 병폐로 보긴 어렵다. 도박중독지수(CPGI·Canadian Problem Gambling Index)로 따진 한국인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지난해 기준 5.4%다. 만 20세 이상 인구 중 약 207만명이 도박중독 유병자로 추정되는 것이다. 같은 잣대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영국은 이 지수가 2.5%, 프랑스는 1.3% 수준이다.

도박중독 정도를 보여주는 NODS, SOGS 등 다른 척도에서도 한국인의 도박중독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하다. 발달한 인터넷 환경으로 인해 불법 도박시장은 160조원 규모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행성에 대한 경각심이 줄어드는 가운데 늘어나는 도박은 대인관계의 갈등, 여타 범죄로 이어진다.

◇사행심을 파는 나라=우리나라는 국가적인 사행산업의 규모도 크다. 정부가 복지재원 등 기금 마련을 위해 운영하는 사행산업은 카지노업,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소싸움 등 7가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우리나라의 합법 사행시장 규모는 지난해 19조원에 달했다. 여기에다 공공연하게 사행산업을 키우려는 시도가 끝없이 이어진다. 나눔로또의 경우 “두 번이나 당첨된 1등 당첨자의 놀라운 사연이 실려 있다”는 소식을 이용자에게 전할 정도다.

지난 9월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회에서 벌어진 장면은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불법시장으로 빠지는 것을 막으려면 합법시장의 재미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원이 있다. 또 어떤 의원은 사행성 사업이라는 말만 나오면 마음을 닫고 부정하는 것만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승식’을 다양화하는 방안 등 경륜경정법 개정의 추진 현황을 보고하던 중 나온 한 이사의 발언이었다. 체육진흥공단 내부에서는 흥미 있는 게임을 개발해 불법도박을 합법의 범위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체육진흥공단은 배당금이 높아지면 사행성이 커진다고 우려하는 일부 의원들을 곤란하게 여겼다.

◇합법의 덫=‘합법’이라고 해서 도박을 권장해서는 안 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성균관대 중독문제연구센터 이근무 책임연구원은 ‘카지노 도박중독 과정과 내용에 관한 참여관찰 연구’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합법의 덫’ ‘신뢰의 역설’ ‘소액의 저주’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불법이 아닌 합법 사행산업은 이용자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여가를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합법의 덫)을 갖게 하고, 결국 중독을 낳는다는 지적이다. 또 철저한 규칙에 따라 운영된다는 식의 홍보는 ‘언젠가 나도 이길 것’이라는 과도한 희망(신뢰의 역설)을 준다. 소액베팅 제한은 오히려 돈에 대한 경각심을 잃게 하는 요인(소액의 저주)이 된다. 전국도박피해자모임 등은 정부가 운영하는 중독관리센터를 두고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