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아직은 멀다

입력 2015-12-07 22:06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의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집을 보면 ‘암, 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비급여 진료비를 포함한 총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한다’고 적혀 있다. 특히 ‘2016년에는 4대 중증질환은 비급여까지 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고 돼 있다. 환자 본인은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4대 중증질환 보장률 큰 변화 없어=공약대로라면 내년부터 암 진단을 받아도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여러 조치를 실시했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4대 중증질환과 관련해 2013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370개 건강보험 항목을 확대했다. 올해의 경우 양성자 치료와 유전자 검사, 폐암 항암제 등 245개 항목에서 건강보험을 새로 적용하거나 대상을 확대했다. 복지부는 “현재까지 급여 확대로 4대 중증질환자 부담 비급여 의료비가 약 6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큰 변화가 없다. 이 비율은 2010년 76.0%, 2011년 76.1%, 2012년 77.7%, 2013년 77.5%다.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는 대부분 환자는 치료비가 줄었다고 느끼기 힘든 수치다.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 분야는 애초부터 다른 질환에 비해 보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암·뇌혈관질환·심장질환 환자의 건강보험 본인부담률은 5%다.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의 본인부담률은 10%다. 전체 질환의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3년 기준 62%다.

비급여 항목이 계속 늘고 있는 것도 이유다. 새로운 의료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고 낮은 수익을 비급여 의료행위로 보전하려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전환했다는 비급여 항목에는 극소수 환자에게만 쓰인 치료행위와 약제가 많다.

◇처음부터 지켜지지 못할 공약=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은 2013년 4대 중증질환에 대한 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100% 보장하도록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5∼10%의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게 하고,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항목까지 건강보험으로 처리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모두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국회 전문위원실의 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복지부는 “모든 항목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성과 안정적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고 했다. 건보공단은 “과잉진료로 재정이 필요 이상으로 쓰일 수 있고 국민 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는 이달 1일 해당 법안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계속 심사하기로 했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건보공단의 반대는 ‘4대 중증질환 진료비 국가 전액 부담’ 공약이 처음부터 지켜지지 못할 약속이었음을 보여준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법정 본인 부담금을 깎아주지 않는 한 보장성 강화의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가가 진료비 전액을 부담한다는 얘기는 정치적 쇼이고 생색내기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체 의료비 부담 해소해야=복지부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 의료비가 체감할 만한 수준으로 줄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서울 아산병원의 예를 들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최근 3개월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43.4%에서 38.2%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유방 절제술을 시행한 유방암 환자의 경우 지난해 5월 수술 시 327만원이 들었다면 올해 9월에는 144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그렇지만 전체 국민의 평균 의료비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비급여 본인부담률을 합한 ‘가계직접 부담률’은 2009년 35%에서 2013년 38%로 늘었다. 정 정책국장은 “4대 중증질환인 뇌졸중 환자의 경우 수술만 건강보험 보장이 되고 재활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라면서 “4대 질환뿐 아니라 전체적 본인 부담을 줄여주는 ‘보편적 보장성 강화’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