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건강보험 재정수지 규모를 둘러싸고 전혀 다른 자료가 공개돼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건보 재정이 10년 만에 고갈된다고 예상한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향후 누적적립금을 근거로 건보 재정 고갈 시점이 늦춰질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기재부는 지난 4일 ‘2060년 장기재정전망’ 보고서를 통해 국민연금·건강보험 재정 고갈 시점 등을 추산하면서 “건보 재정이 내년을 정점으로 꺾여 2022년부터 적자를 보게 되고 2025년 고갈 사태를 맞는다”고 밝혔다. 장기재정전망 보고서는 정부가 처음 발표한 것이어서 각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건보공단은 6일 “올해 건보 재정은 3조원 가까이 흑자를 내고, 내년부터 2019년까지 해마다 늘면서 2019년에는 누적적립금이 2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7월 재정전망에서 내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예상했다가 질환의 조기 발견, 암 발생률 감소, 노인진료비 증가율 둔화 등을 이유로 건보 재정수지 전망을 대폭 수정했다.
기재부 발표를 보고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한숨을 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젊은층과 말년에 경제적 난관에 봉착한 노년층은 그 어느 연령대보다 큰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젊은층은 ‘건보 재정이 2025년 고갈되면 혜택 받을 길이 없는데 과연 보험료를 낼 필요가 있을까’라며 반감을 가졌을 수 있다.
노년층은 ‘늙을수록 진료 받을 일이 늘어나는데 건보 재정이 바닥나면 무슨 수로 진료비를 감당해야 하나’라며 절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자녀 교육비에 결혼비까지 대느라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노년층은 ‘건보 재정 조기 고갈’이라는 비보를 접하고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무책임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정책 폭력’을 자행했다는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기재부가 건보 재정 전망치를 발표하기 전에 보건복지부와 긴밀한 협의를 하고 복지부가 건보공단에 중·장기적인 건보 재정 예상치를 문의했다면 이런 어이없는 보고서가 나올 리 없다. 부처 간에 쳐진 칸막이가 생각보다 높고, 소통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기재부가 내년 건보 재정 전망도 주먹구구로 하고 있는데 국민연금과 관련한 45년 후의 장기재정전망을 누가 믿겠는가. 혹여 위기의식을 조장함으로써 각종 보험료를 올리고 보험금을 낮추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해 당사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전 국민의 삶과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런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금 전망에 좀 더 치밀하게 임해야겠다.
[사설] 국민 압박용처럼 보이는 기금 예측 좀 더 치밀하게
입력 2015-12-07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