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내년부터 시행할 ‘청년수당’ 정책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정기소득이 없는 미취업자 중 사회활동 의지를 가진 청년들에게 최장 6개월간 교육비·교통비·식비 등 최소 수준의 활동 보조비용에 해당하는 월 50만원을 청년활동지원비(청년수당)로 주는 사업을 시행한다고 지난달 5일 발표한 바 있다. 만 19∼29세 중위소득 60%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구직활동 계획 등을 심사해 연간 3000명을 선발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예산으론 90억원을 책정했다.
이 같은 정책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실효성이 떨어지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정부 여당은 “명백한 포퓰리즘”(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최경환 경제부총리)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청년들의 건강한 정신을 파괴하는 아편 같은 존재”(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업 절벽 앞에 선 청년들에게 사다리를 놓아주자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중앙정부와의 사전협의 대상인 ‘사회보장제도’에 해당하는지를 놓고도 양측이 설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중앙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사전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서울시는 청년수당은 복지제도가 아닌 만큼 협의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청년수당 논란을 정확히 짚어보기 위해 양 당사자인 서울시의 주장과 고용노동부의 반박을 들어본다.
포퓰리즘 아니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
서울시는 정책수용자인 청년 당사자들과 3년간의 협업을 거쳐 지난달 5일 ‘청년보장 2020’을 발표했다. 청년보장 2020은 일자리, 주거, 부채 등의 어려움을 겪는 청년 상황에 맞춰 기존 청년정책을 업그레이드했다. 청년의 설 자리(청년활동지원), 일 자리(뉴딜일자리), 살 자리(청년공공임대주택), 놀 자리(활동공간조성) 등 4개 분야 20개 정책으로 구성돼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최근 이슈로 부각된 청년활동지원은 전체 사업의 일부분으로 진로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서울시는 내년에 시범적으로 중위소득 60% 이하 3000명의 청년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활동계획서(공공·사회활동 또는 자기주도적 활동)를 제출받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청년수당을 지원하고자 한다.
이 방안은 청년들과 같이 현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 정책의 공백을 진단해서 만들어낸 청년과의 공감정책이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새로운 청년보장(Youth Guarantee)을 추진 중에 있으며, 프랑스는 올해 구직활동과 직업교육 참여를 약속한 18∼26세 청년 약 5만명에게 월 452유로(약 57만원)를 지급하는 알로카시옹(현금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당과 중앙정부에서 청년활동지원 사업에 대해 지나친 비판을 가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여당의 대표급 인사들은 ‘매수행위’ ‘아편’ 등의 표현까지 동원했다. 정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설익은 비판으로 보인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일부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청년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비판은 우리 현장과 맥락에서 많이 벗어난 이야기들이다. 기성세대와 정책 당국자(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들은 청년들의 상태와 어려움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구체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필요도 없는 시험과 자격증을 따려고 시간을 버리고 있는” “하고 싶은 경험도 못해본 채 아르바이트에 지쳐가는” 청년의 이야기 등 현실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청년들에 대한 ‘문맹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정치공학적 비판은 공허하다. 요즘 청년들은 하루하루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느라 지쳐가고 있으며, 언론은 이를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사회에서 일을 찾기 힘들다. 청년들은 정부의 숫자놀음 속에서 질 낮은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좌절과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정책에 대한 자체 분석에서도 자기주도적 과정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산하 연구기관 보고서를 참고해 정책을 입안하기 바란다.
이제 시작이다. 청년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서울시의 공감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해주길 바란다. 서울시와 청년의 약속은 아주 작은 규모지만 청년과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다짐이다. 이런 일을 스스로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남의 시도를 도덕적 해이로 폄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청년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기 바란다.
바라건대 이 시대가 청년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론의 장을 마련하자. 지금 권한 타령을 할 때가 아니다.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는 갈등을 조정해내는 게 정부 역할이다. 청년 문제와 사회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만이 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무조건 반대하며 막는다고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이슈 논쟁-서울시 ‘청년수당’ 정책] “청년들 ‘설 자리’ 만들어주는 것”
입력 2015-12-09 04:00